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80)

 

음식은 사료와 다르게 깊은 정신적 의미와
또 다른 기능이 주어질 때 진정한 음식이 된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어느 형태로든 먹이가 필요하다. 즉 자기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엽록소가 있는 식물은 대지에서 얻는 물과 공기, 토양으로부터 몇 가지 자양분과 햇빛이 있으면 자기가 필요한 생명자원을 얻을 수 있고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다. 이런 탄소동화 기능이 없는 대부분 생명체는 식물이 만들어 놓은 생물자원을 이용해 생을 이어가고 있다. 동물의 먹이 근원을 살펴보면 모두가 식물재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양에너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이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이 먹이의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동물의 먹이는 사료(feed)라는 말을 사용하나, 인간이 먹는 것만이 음식(food)이라 구분하여 그 뜻을 달리하고 있다. 어른이 드시는 밥은 ‘진지’라는 높임말을 썼고, 임금님에게는 ‘수라’라는 극존칭으로, 대상에 따라 음식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단지 배를 채우는 물질적 개념을 넘어 정신영역까지를 고려하고 있었다.

동물의 사료는 먹는 동물의 선호보다는 영양을 따지고, 경제성이 먹이의 종류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 왔다. 가축의 경우 목적이 고기라면 비육, 즉 고기 생산이 많아야 하고, 닭이라면 산란, 즉 알을 많이 낳도록 먹이를 조절한다. 그러나 우리 식품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영양소의 공급은 필수이나, 여기에 개인에 맞는 맛과 취향이 고려돼야 하고, 종교나 식습관에 따라 선택의 대상이 달라진다. 제례 등에서는 정신적인 면이 훨씬 더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상당 부분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면서 먹는 행복감에 젖어 들기도 한다. 한 끼 식사를 잘하고 났을 때 포만감에서 오는 흐뭇함과 맛을 즐기면서 오는 만족감으로 정신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또한, 같이 먹으면서 서로 소통한다. 결코, 사람은 음식을 그저 배를 채우는 목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은 사료와 다르게 깊은 정신적 의미와 또 다른 기능이 주어질 때 진정한 음식이 된다. 음식을 매체로 하여 서로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같이 먹는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음식을 먹어 배고픔을 해결하고 에너지를 얻는 대상이라는 동물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야 인간이 먹는 음식으로의 대접이다.

한국의 음식(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하여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이 있다. 시간과 세월이 축적된 마음의 음식이요, 기다림의 미학이 함께한 우리만의 독특한 식문화가 베인 음식이다. 즉석화된 음식이 드물고, 모두가 상당한 시간 조리해야 음식으로서 고유한 맛을 낼 수 있다. 여러 채소류의 무침이 그렇고, 찌개는 각종 원료 조합에 양념을 넣어 적당히 끓이는 수고를 더해야 제맛이 난다. 한식 부재료의 특징인 김치, 장류, 젓갈과 식초 등 발효식품은 결코 시간을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없으며, 이들이 적절히 조합되고 혼합돼야 진정한 한식이 된다.

이 모두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식은 이 시대 조류에 맞지 않는 슬로푸드(slow food)이나, 즉석식품(fast food)과 차원을 달리한, 인간만이 먹는 식품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근래 새로운 용어로 미식학(gastronom)이 도입되고 있는데, 음식을 만들고, 만들면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터득하도록 한다. 이어서 만든 음식을 서로 맛있게 먹으면서 평가하는 것 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요 또 다른 행복이 아닌가 여겨진다.

세계적으로 간편 편의식이 대유행으로 자리 잡아가고는 있지만, 유명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그 어느 것 하나 즉석식품이 없다.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는데, 먹는 것마저 이 추세를 따라가서 음식이 사료가 되는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허기만을 달래는 사료를 먹지 않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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