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76)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마감하는 그 시점까지 이웃에 폐 끼치지 않고
나로 하여금 세상이 더 밝아졌다는 여운 남기길

회는 어릴 때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 친숙하지는 않아, 지금도 그렇게 썩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좋아하는 동료들과 횟집을 들를 때가 있다. 식당 입구 수족관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눈에 익어 아는 어종도 있으나, 생소한 놈들도 있어 흥미롭게 구경한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회로 먹을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언짢은 생각이 든다. 내가 즐기기 위해서 그 생명을 끊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다.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마음껏 놀던 녀석들이, 이 좁은 공간에 갇혀 마감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착잡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즉석에서 닭을 잡아 털을 뜯고 먹을 수 있게 다듬어 주는 데가 있었다. 한 마리씩 순서대로 꺼내 즉석에서 정리하는 것을 나머지 살아있는 닭들이 무심히 보고 있다. 지능수준이 낮으니 동료가 당하고 있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할 터인데, 그것 또한 나에게는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동물은 뇌의 크기에 따라 지능이 달라진다는데, 여러 짐승 중에서 뇌의 크기가 비교적 큰 소나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서 생을 마감할 때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 모든 생명체는 지금껏 이어온 삶의 마지막에 살아왔던 생활이 어떻든 슬픈 마음이 드나 보다.

어느 과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 사이에서도 떨림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근래 연구결과에 의하면 식물도 여러 방법으로 교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과수원에 즐거운 음악을 틀어주어 과일 맛을 좋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니 도끼질하는 나무꾼이 무섭지 않겠는가.

모든 생명체에 차이가 있겠지만, 생체 내에서 생화학적인 반응을 통해 대사활동을 하고, 이런 활동으로 에너지를 얻으며, 자기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와 교신하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활동의 하나로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알고 싶은 정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자기의 생명과 관계되는 것이 아닐까.

지능수준이 올라갈수록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방어수단이 발달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하며 그 능력을 높이고 있다. 사람도 계속 발전하여 이제 이 지구상에 천적이 거의 없어졌지만, 가장 진화가 늦어 하등생물이라 여기는 미생물에 의한 공격을 아직도 완전히 막지 못하고 있다.

지구라는 큰 울타리 안에 사는 우리도 닭장이나 수족관에 갇혀있는 닭이나 물고기와 차이나지만, 다른 점은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갖고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다가 때가 되면, 아니 누군가의 손에 끌려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먼저 가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초조한 생각을 한다.

장례식장에서 충격을 가장 많이 받는 경우가 떠나시는 부모님보다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 주검을 대할 때라고 한다. 부모님은 연세로 봐서 마음의 준비를 해 왔고, 나보다 앞서가시리라는 것을 예측하지만, 친구는 나와 바로 비교가 되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고 한다. 다음 차례는 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고 했는데, 누구도 삶을 마친 그다음은 가보지 못했고, 또한 갔다가 돌아와 앞 세상을 전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믿기도 그렇고 믿지 않을 수도 없어 그냥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다.

그때가 언제이건. 그래서 닭장의 닭이나 수족관의 물고기와는 비교하긴 어렵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이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마감하는 그 시점까지 같이 소풍 나온 이웃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이 조금 더 밝아졌다는 여운을 남기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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