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75)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가장 우선되어야 할 대상은 가족
끝까지 의지할 곳도 가족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물을 보는 생각이나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형태가 계속 바뀐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그 변화가 가장 심한 것 같다. 어릴 때 부모는 내 세계의 모든 것이었고 떨어지면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부모와의 관계는 서서히 그 농도가 옅어진다. 특히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부모보다 학교, 친구와 관계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상급학교로 갈수록 부모, 가족과 접촉빈도는 낮아진다.

이어지는 사회생활에서는 집이 하숙집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고, 결혼하면 아들은 사돈의 자식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보다 자식, 부부로 모든 관심이 건너간다. 부모와 관계는 인륜으로 책임을 느끼다가 계속 멀어지고 생을 달리하면서 생체로서 관계는 영원히 끝난다. 단지 자식의 마음에만 남는다.

이런 사회현상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의 본성이고, 이렇게 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있다. 그러나 부부로 구성된 가정은 매우 다르다. 가정은 사회 구성의 핵심이면서, 남녀 간에 다름을 극복하고, 사회의 기초집단을 만드는 단위이다. 결혼 초 사랑이 바탕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보면 사랑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인정하나, 그게 모두가 아닌 것을 빠르게 인정하게 된다.

현실의 삶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는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활동에서 부딪치는 예상하지 못한 여러 일들, 더하여 부부간 의견 차이와 여기에서 오는 갈등 등은 그냥 사랑으로 얼버무려 지나가기에는 그렇게 쉽지 않다. 부부생활도 아이가 없을 때와 돌봐야 할 자식이 있을 때는 크게 달라진다. 둘만의 문제가 가족 전체로 확대되고 가족 전체의 의견, 더 구체적으로는 자식의 일이 제일 우선인 생활로 접어든다.

세월이 흘러 자식 교육이 끝나면 취직과 결혼까지 거쳐야 부부가 오랜 세월 구축한 가정의 큰 역할에서 벗어났다고 한숨을 쉰다. 근래에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시켜 내보낸 자녀의 사후관리까지 신경 써야 하고, 맞벌이하는 경우 손자, 손녀의 육아까지 감당해야 하니 아마도 그 끝은 생의 마감과 함께 정리될 것 같다.

오랜 세월 해로한 부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사랑보다 상대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사의 술회에서도 부부간 관계는 30%의 사랑과 70%의 용서와 이해라고 하나, 사람에 따라서는 그 비중이 다르다. 10%에 90%의 비중으로 상대의 잘못을 품어 안는 노력이 더 필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적어도 한 가정에서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짐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가족에게 씻지 못할 큰 상처를 주는 때도 있다. 생활이 어렵다고 자살하거나 가출할 경우 가족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일생 치유하기 어렵다. 또한, 용서와 이해의 덕목을 가볍게 여겨 이혼을 결심하고 헤어진 후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를 본다.

늙지 않을 사람은 없고 노년기를 거치지 않은 경우도 극히 예외적인 불행한 사태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앞서거나 뒤서거나 내 곁을 떠나고 자식까지 자기 생활에 바쁘다 보면 달랑 부부가 남는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늦게까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행운을 즐기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평균수명이 여자에 비해 짧고,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으니 적어도 5~10년은 아내보다 먼저 갈 거라 생각돼 조금은 안심이 되나, 현실에서는 누가 먼저일는지 모르니 빨래, 밥하는 것을 평소 익혀 놓으라고 한다. 그런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게 뜻대로 되어가는 것인가.

인간은 장래를 예측하여 준비하는 슬기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살면서 재산의 비축도 중요하고 건강관리도 꼭 필요하나, 늦기 전에 남을 사랑하여 내 마음에 품는 자세와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어린아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주위를 둘러보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내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그 처지를 이해하도록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슬기로운 방법이라 여겨진다.

나이 먹어갈수록 나 아닌 상대, 그 상대가 사람이나 동물이건, 혹은 식물이라 하더라도 배려한다는 생각이 우선되었으면 한다. 여기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대상은 가족이며, 끝까지 의지할 곳은 가정이요, 가족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나이 듦의 징표이다. 생을 마감할 때 가족과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후회가 없기를.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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