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72)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조리는 여성의 몫이고 주부가 주로 담당하는 영역으로 오랫동안 치부하고 있었다. 이런 고정관념은 아마도 인류 역사와 함께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석기시대부터 시작한 동물 사냥은 육체적으로 강한 남자가 맡았으며, 부족 간 싸움도 남자의 몫이었고, 이런 역할에 기능적으로 맞지 않았던 여성은 뒤에 남아서 음식을 만들거나 육아에 전념하는 것으로 하는 일이 나뉘었을 것이다.

이런 역할 분담은 최근래까지 변화가 없었으며, 특히 가정을 지키면서 음식을 만들고 조리하며 내 가족을 챙기는 것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또한, 남자가 부엌일을 하게 되면 별도로 달린 것을 떼어버리라고까지 극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은퇴한 남자들이 조리를 배우려 몰려들고 있는데, 살다가 불행히 남자가 홀로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최소한 내가 먹어야 할 음식은 내가 만들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존본능이 작동하고 있나 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 조리에 취미가 있어 재미와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는 깊은 뜻으로 조리를 즐겨 하는 남자가 늘고 있다. 물론 세계적인 요리사(chef)들은 거의 남성이며, 호텔 주방도 거의 남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요리는 꼭 여자의 몫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가정에서 어머니나 아내는 조리를 빼놓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엌과 음식이 연계되는 것은 나만의 상상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따끈한 밥과 내 입맛에 꼭 맞는 여러 반찬은 일생 잊지 못하고 결혼해서도 이를 비교하다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릴 때 굳어진 혀의 맛감각은 이미 유전인자에 각인되었으니, 이것을 바꾸라는 요구는 심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에 적응하기 위해서 극기 훈련이 필요하거나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는 내 희망 사항을 억누르고 새로운 것에 맞추려는 또 다른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치 하나에도 그 짠맛과 고춧가루의 매운맛이 어우러지고 젓갈을 어느 것으로 쓰며 마늘 등 향신료를 얼마를 쓰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는데, 어머니가 담근 김치와 아내가 자기 어머니에게 배워 시도한 김치 맛이 어찌 같겠는가. 처음부터 바라는 것이 무리임을 아는 데는 끈기가 필요하다.

결국, 살기 위해 남자가 적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적응하도록 그 시간을 할애하는 아량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는 아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타박하면 간 큰 남자로 존경을 받는 때가 되었으니.

가끔 아내가 조리하는 것을 유심히 본다. 음식을 조리하는 순서가 정확히 정해져 있다. 쌀 씻고 적당량(대단히 숙련된 가늠) 물을 붓고 전기밥솥에 쌀을 쏟아 넣고 스위치를 올린다. 다음 조리할 음식 재료를 꺼내어 다듬고 자르며 한쪽에서는 데칠 물을 냄비에 올려놓는다. 물론 오늘 끓일 찌갯거리에 따라서 그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하나하나가 일정한 순서와 패턴이 있다.

무나 파, 마늘을 다루는 것을 보면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숙련감에 존경의 마음이 앞선다. 이런 여러 일을 하면서도 틀어놓은 TV의 얘기를 모두 소화하고 참견하는 여유까지 부린다. 그리고 애들까지 관리한다. 보통 사람의 뇌 기능은 서로 달라, 잘하는 것이 같지 않다고 하는데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듯이 남녀 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섬세한 것은 여성의 몫이고 거칠고 세세한 것이 아닌 것을 남자가 할 일이라고 단정하는데, 근래에는 이런 구분도 헛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가르치다 보면 성적순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10명 중 9명이 여학생이고 좀 특출한 남학생이 그저 한둘이 끼일 정도이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단연 여성이 우세한 경향으로 공무원의 성비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이 외우고 기억하는 데서 특출한 기능이 있다기보다는, 그만큼 집중하고 노력하는 결과로 보여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천지를 창조할 때 하느님께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고 할 일을 나눴다는데, 이 시대에 와서는 이 구분도 흐려지고 있으며 고유한 영역과 기능도 공유하여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내에게서 느끼는 믿음과 신뢰는 역시 마음에 드는 따뜻한 음식이요 내 입맛에 맞춰주는 그 정성이 매일 내가 다시 뛸 힘을 주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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