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70)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기다림과 노력의 축적으로 아름다운 완성의 기쁨
맛보려는 마음은 멀어져버린 가치 되어

정다운 모습, 뜨개질하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깔끔한 부인의 모습을 전철에서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자기 손놀림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정다웠고, 아주 먼 기억 속의 내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누나가 열심히 뜨개질하여 만들어 준 장갑과 목도리는 고마움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나이에, 겨울동안 손과 몸을 추위로부터 막아주는 좋은 보호막이 되었다. 그때 느꼈던 푹신하고 부드러운 촉감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누나의 뜨개질하는 손놀림과 뜨개실을 손가락에 감아 홀치기를 하는 정경이 다시 떠오른다.

뜨개질하는 대바늘은 매듭이 긴 대나무를 잘 다듬어 매끈매끈해야 하고, 또 만들려는 작품에 따라 굵기가 달랐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한 일은 대나무를 구해 매듭 사이의 긴 부분을 선택, 적당한 크기로 잘라 쪼개고, 곱게 다듬어 매끈한 뜨개질바늘을 만든 것으로, 그 기억이 새삼 어제 일같이 떠오른다.

지금은 모두가 기계의 힘을 빌려 장갑과 양말을 쉽게, 싼값에 이용하지만, 기계가 보급되기 전에는 시린 발을 보온하기 위해 양말 대신 버선, 손가락이 구분되지 않는 벙어리장갑이 전부였다. 목도리 대신 벙거지가 추위를 막는 좋은 수단이었고, 여유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명주를 썼지만, 서민은 대부분 무명을 사용했다.
 
다시 뜨개질로 돌아가면, 보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날렵한 손놀림으로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신기하다.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색이 다른 실타래로 색의 조화를 맞춘다. 여기에 홀치기 방법에 따라 도드라지는 무늬까지 넣을 수 있으니, 머릿속에는 이미 자세한 설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뜨개질할 때 코 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 코 숫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또한, 장갑같이 목을 늘리고 줄이는 작업은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양털로 만든 털실은 굵기와 색깔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고, 자기가 만들 작품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털실을 사용하였다. 이 뜨개질은 정신몰입과 여유시간 활용에서 아주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진다.

뜨개질하는 과정에서 한 코라도 빠지면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을 미련 없이 풀어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해야 한다. 옆에서 볼 때 나 같으면 해놓은 것에 미련이 남을만한데, 뜨개질하는 분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잘못된 것을 과감히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가 지금까지 해놓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털고 새롭게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마무리되면 뜨개질 할 때 미리 마음속에 정해 놓은 정다운 사람에게 기쁜 마음의 선물로 건넨다. 자기의 온 정성과 시간을 부어 넣은 예술품이 건너가는 순간 자기의 역할은 끝났다고 여기나 보다.

특히 연인 간에는 자기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머리에 그리며 한 땀 한 땀 마음을 불어 넣었으니 얼마나 간절한 속내가 녹아들어 있겠는가.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고 간직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뜨개질과 함께 자수 또한 비슷한 마음의 경지라 여겨진다. 우리는 보통 수를 놓는다고 한다. 동양에서만 독특하게 발전한 수놓기도 정신영역의 진수를 나타내는 예술작품이다. 이들 모두는 정신영역에 들어 몰입된 경지에서만이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조화된 작품이 나올 것이다.

한 올 한 올이 전체 구성에 큰 줄기가 되고 그 가닥이 모여 전체 조화를 이루어 작품이 완성된다. 뜨개질과 수놓기 모두 정신 수양에 으뜸인 작품 활동이다. 물론 손놀림의 진수를 보는 것이긴 하지만, 머릿속은 한곳에 집중하여 전체 그림을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 하는 행동에 몰입한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빨리하지 않으면 뒤진다는 강박관념에 매몰되어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과정은 어떻든 쉽고 빠르게 결과를 내는 것이 최선인 냥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한두 번 시도하여 안 되면 포기해 버리고, 그것이 몇 번 계속되면 아예 노력을 접고, 때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생을 망치는 결과를 낫는다.

기다림과 노력의 축적으로 아름다운 완성의 기쁨을 맛보려는 마음은 멀어져버린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눈길을 먼 산에 두는 것보다 눈앞의 현상에 너무 집착하여 내일이 없는 생활이 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자라나는 세대와 젊은이들에게 뜨개질과 수놓기 정신을 가르쳐 시간을 축적한 한 올 한 뜸이 크고 보람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본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의 생각일 뿐인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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