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63)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가족 공동체는 더불어 먹는 음식으로
정신영역도 공유할 수 있다

며칠 전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외판원으로 일하는 분이 우리 집에 전달할 것이 있어 방문하여 거실에서 아내와 나눈 대화를 통해서다. 마침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하여 콩나물국을 끓이는 냄새를 맡고 “아니 지금도 집에서 밥을 해서 드세요?”라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듣고 어리벙벙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우리 생활이 바쁘고 뛰어다니면서 뒤돌아볼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저녁에 돌아와 쉴 자리는 가정이요 내 집이다. 낮에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다 해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그 집이 없다면 우리가 정상적으로 힘을 보충하고 내일 이어지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고 힘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가정은 무엇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고 생각을 같이하는가. 물론 천부적인 혈연관계가 우선이지만, 같이 먹고 함께 잠자리를 하는 것에서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 식구라는 말은 같이 밥을 먹는 구성원이라는 뜻인데, 밥을 함께 함으로써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 그렇다. 먹는 것이 없으면 가장 본능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서 중요하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는 먹는 밥상에서 정을 나누고 공감하며 만족한 감정을 마음으로 전하면서 이어지는 삶의 에너지를 얻어왔다.

같이 먹는 밥상이 사라진 가정은 과연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세대가 변하여 각자의 시간과 계획에 따라 세 끼니를 같이 할 수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은 아침 외에는 집에서 식구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있다. 정부에서 저녁 시간을 돌려주고자 노력하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예상할 수 없지만, 강제가 아닌 자발적이고 큰 흐름에서 같이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을 끝내고 바로 학원에 가야 하는 청소년을 둔 부모가 여유롭게 자녀들과 같이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을까?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직장에서까지 점심을 먹을 때도 혼밥이 유행하고 있다니 도대체 일터에서 언제 동료들과 정답고 푸근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으며, 예상하지 못한 오해가 있었을 때 서먹서먹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 기회가 있겠는가. 가정과 직장에서도 가족과 동료들이 같이 밥을 먹는 기회가 없어진 상황은 삭막하고 메마르다. 과연 언제 가족과 직장의 구성원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각자 가진 생각과 감정을 정답게 나눌 수 있을 것인지.

우리는 전통적으로 밥상머리 교육을 통하여 자라나는 자녀에게 양보와 자제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협동 정신을 갖고 성인으로 성숙하도록 지도해왔다. 별도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어른들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연히 스스로 터득하도록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금과 같이 가족이 같이 밥을 먹을 기회가 없다면 과연 한 식구인 가족과 가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저 피를 나눈 물리적 관계와 부모 자식 간에 의무만 존재하고 마음의 교류, 정의 교감은 기대할 수 없으며, 그저 잠자리를 제공하는 여인숙 같은 공간이 가정이란 말인가.

그렇게 되어서는 인간다운 문화와 정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물리적인 접촉과 행동에서 정신이 성숙하고 인격이 형성되는데 우리가 같이 먹는 식사의식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확실한 매체이다. 오랫동안 인사말로 언제 우리 같이 “밥 한 끼 합시다”라는 말을 한다. 그냥 밥을 먹어 생리적인 배고픔을 해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상대와 마음을 터놓고 정을 나누고 싶다는 바탕에 깔린 내 뜻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근래 연구에 의하면 먹는 음식에 따라 유전인자가 변한다고 한다, 후성유전학이 정착되고 있는데, 음식을 같이 먹음으로써 유전인자에 영향을 주어 생각과 행동이 닮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족 공동체는 더불어 먹는 음식에 의해서 정신영역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적어도 하루 한 끼는 모든 가족이 모여 단란한 가족상을 대할 수 있는 사회는 과연 기대할 수 없는 바람인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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