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62)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기다림과 여유, 우리 생활에서 소금과 같은 자세
함께 더불어 산다는 생각 가지고 살았으면

살아감은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것 하나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을 두고 여유를 부려야 결과가 나온다. 작은 것부터, 크다고 느끼는 어느 것 하나 기다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불을 피워 밥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 뜸을 들이는 시간을 주어야 맛이 제대로 난다. 이 과정이 기다림의 시간이요 그 기다림으로 내가 원하는 완성된 결과를 얻는다.

기다림은 우리생활에서 길던 짧던 여유를 준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많은 사고는 3초 만의 여유로 많이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한 순간의 여유는 어려움을 이기고 일상으로 되돌리는 힘을 가졌다. “빨리 빨리”가 한국인을 대표하는 공통된 사고가 되었다고 하는데, 급속한 성장을 이끌기는 하였지만 이제 경제적 여유와 세계 10대 선진국에 들은 지금은 정신적 여유로 좀 더 여유를 즐겨야 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근래 우리 생활이 너무 각박하고 여유를 부릴 틈새를 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인 여유가 없이 쫓기면서 허둥지둥 살고 있다는 기분이다. 이래서 생활이 팍팍하고 메마르며 건조하다. 여유로움은 잠시 기다림에서 나온다. 복잡한 차량 흐름에서도 깜박이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는 주의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여유를 갖고 마음을 다스리라는 암시가 될 것이다.

진행방향에서 신호가 바뀌어 기다리는 순간 앞차가 0.1초도 안되어 출발하지 않으면 경적을 울린다. 조금 기다리면 어련히 출발하련만 그 순간을 참지 못하며 불쾌한 소음을 낸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기다림과 여유, 우리 생활에서 소금과 같은 꼭 필요한 마음의 자세이다. 지나치면 게으름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자기 기준으로 적당하다면 마음의 평정을 얻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우리 민족은 서두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천스럽게 여겼다. 양반의 팔자걸음은 좋은 자세는 아니지만 여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몸이 느림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빨리 빨리”가 아니라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여유를 갖지 않을 런지.

우리 민족의 여유로움의 마음자세가 변한 시기는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피압박민족으로서 거친 생활과, 결정적으로 6.25 전쟁의 절박함이 불러온 정신적인 변화가 아닌가 여겨진다. 참혹한 전쟁에서 한 순간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어찌 여유를 부릴 수 있겠는가. 그 후 닥쳐온 경제적 어려움은 뛰지 않으면 먹고 살지 못하는 여건을 만들어 우리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 일시적인 혼돈의 시기이긴 하지만 이제 1인당 GDP가 3만 불 시대에 접어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조급함을 자제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조금 더 넓은 마음, 여유를 갖고 살아갔으면 한다.

그냥 앞만 보고 다른 사람을 제치고 앞서 나갈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같이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내가 일등을 하려면 나와 같이 있는 동료가 있어야 하고, 장사하여 돈을 벌려면 내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내 동료와 소비자를 제쳐버리고 나 혼자 존재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술이 되고 김치가 익어가는 발효과정을 보면 우리의 삶에서 갖춰야 할 덕목을 알려주는 것 같다. 필요한 재료를 섞어 버무리고 조건을 맞춰놓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해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다림의 여유를 갖지 않으면 완전하게 숙성된 좋은 술을 즐길 수 없고 맛있는 김치를 반찬으로 먹을 수 없다.

사계절은 어떤가. 봄을 거쳐야 햇볕 따가운 여름을 맞고 그 결과로 곡식과 과실이 익어 우리의 식량으로 된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기다림의 결과이고 아무리 조급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를 음미하면 우리가 살아갈 때 필요한 여유를 알려준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렇다. 국화꽃 한 송이는 시간과 어려움을 이기고 기다리면서 가을에 꽃을 피워낸다. 우리의 생활도 조금은 기다림의 여유를 갖고 함께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면 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