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56)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괘종시계와 같은 평형을 유지함으로써
우리 삶은 균형을 잡아간다

우리집 안방에는 장모님께서 시간을 지키라는 뜻을 담아 결혼선물로주신 괘종시계가 있다. 계산해 보니 45년이 흘렀는데,  시계추가 왕복하며, 지금도 정확히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관리는 한 달에 한번 태엽을 감아주면 그만이다. 현재 시간을 매 30분에 경쾌하고, 댕댕거리는 종소리로 알려준다.

내가 잠자는 시간에도 쉼 없이 움직임은 계속되고, 시간을 알리는 댕댕거리는 소리는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컴컴한 밤에도 시침과 분침, 두 손을 쉽게 읽어 시간을 알 수 있게 벽에 걸려있고, 제자리를 지키며 내가 봐주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10년 전 쯤인가 괘종시계의 생명인 시간 알림과 종소리가 한쪽의 기능을 잃었다. 종을 치지 않는 것이다. 내 어설픈 실력으로 고쳐보려 했으나 헛수고. 괘종시계를 수리할 수 있는 점포를 찾아 인터넷을 뒤졌고, 근처 시계점포, 남대문 시장까지 돌았다. 헛수고였다. 동네 시계점포에 물어보니 아직도 태엽을 감는 괘종시계를 쓰고 있냐고 묻는다. 원시인을 대하는 눈빛이다.

그렇다. 시대는 변했고, 지금은 간편하며 10년이 가도 1초도 틀리지 않은 전자시계가 나왔다. 세슘 시계는 수백 년에 1초의 차이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계의 기본 기능은 정확한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기능을 충실히 하면 제기능은 100%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집에 있는 괘종시계는 이 일차적인 기능을 훨씬 뛰어넘어 나에게 정신적 위안을 준다.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면서 이 시계가 그 과정을 같이하고 있으며, 지금도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 시계를 보고 있으면 내 지나온 과거가 쭉 펼쳐진다.

외곽 틀은 밤색을 띄고 겉치레가 없이 크게 두드러진 것은 없는 모습이긴 하지만, 내 눈에는 사랑스럽고 귀엽다. 이 시계를 보면 아버님이 왜정 때 사서 걸어 놓았던 벽시계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는 아마도 고향 할아버님 방에 걸려있던 시계가 연상되어 우리집에 있는 시계도 같은 애착을 갖게 되나 보다.

며칠 전 시계태엽을 감는(밥을 준다고 한다) 과정에서 안사람의 탄식이 나온다. “우리 시계가 수명을 다한 모양이에요” 아차 그렇게 되었지. 그 오랫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우리를 묵묵히 치켜 주었고 게으르지 말라고 재깍재깍 갈 길을 재촉해 주었는데,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괘종시계 생명인 수직을 맞추는 노력을 해 보았다.

시계추가 있으니 정확히 지구 중심 방향으로 수직이 되지 않으면 평형을 잃어 계속 왕복 운동을 하지 못한다. 즉 지구를 향한 평형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면 가는 길을 멈춘다. 몇 번의 시도, 한번 위치를 수정하고 5분을 기다리고, 다시 시도, 아!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임을 계속한다. 이때의 감사와 안도 그리고 즐거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 집의 이 괘종시계가 나에게 큰 교훈을 준다. 지구를 향하여 평형을 잃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그르침을 방지할 수 있음을 공자께서는 누누이 중용을 강조하였고, 이는 치우침을 경계한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경구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생활 속에서 괘종시계와 같은 평형을 유지함으로써 우리 삶이 균형을 잡아간다는 것을 알아간다. 균형을 잃어 건강을 해치고 재물과 권력에 치우치면, 결국 자기 삶을 망치는 결과를 맞는다. 오늘도 힘차게 왕복을 거듭하는 우리 벽시계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나를 다잡아간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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