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55)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군고구마 온기에서 고향의 아늑함을 느끼고
어머니의 따뜻했던 정을 마음 속에 품어본다

군고구마를 생각하는 머릿속 영상에 따라 세대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군고구마의 향기를 맡으며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떠올리면 60대 이상이고, 길거리 군고구마 장수를 연상하면 40대, 군고구마 향에 별반 반응이 없으면 20대 정도가 아닐까.

1960년 이전 세대에게 고구마는 하늘이 내려준 대체식량이고 간식이며, 논밭에서 일할 때 먹은 훌륭한 새참이요 끼닛거리였다. 찐 고구마 몇 개를 먹으면 허기를 달랠 수 있어 나머지 논밭 일을 거뜬하게 해냈다. 벼를 베다가 논두렁에 앉아 포기김치를 곁들여 먹었던 찐고구마 맛이 엊그제 일 같이 머리에 머문다.

아마도 고구마에 대한 추억 중 백미는 군고구마가 아닐까 한다. 고구마를 썰어 숯불에 굽는 야끼모(일본말이나 이 말의 뜻이 와닿는다)는 그 향과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진한 감동으로 상상에 불을 붙이는 것은 저녁밥을 짓기 위해 짚불을 때고 나서 남은 잿불에 묻어 놓은 고구마가 익었을 때 따끈함을 느끼면서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 맛이란. 아직도 뜨거우니 호호 불어가며 초겨울 밤을 가족과 함께 한 순간들이 떠올라 훈훈한 정감에 젖는다.

아쉬웠던 것은 그렇게 짚불에 묻어 놓았던 고구마를 잠에 취해 꺼낼 때를 놓치고 아침에나 생각나 뒤져보면 숯덩이가 되었거나 차갑게 식어있다. 더 황당한 것은 어머님이 아침을 짓기 위해 남은 재를 잿간(거름하려 재를 모아 놓는 창고)에 버린 경우, 그래도 아쉬워 뒤적여 보면 운 좋게 찾아지기도 하는데, 이때 반가움과 어제 먹지 못한 아쉬움의 교차, 가끔 이 나이 먹어서도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이런 기억이 연상되는 나는 그 생각을 간직하기 위해 아직 조금 더 버티고 살아야 하나보다.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고, 그 시간이 나면 앞을 바라보고 대비하는데 더 에너지를 쓰라고 하는데, 과거가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에 스스로 이유를 찾는다.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마도 인간의 속성일 것이다. 구태여 다른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추기 싫은 것도 있지만,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때 오늘을 더 기분 좋게 시작하고,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요즈음은 거의 없어졌지만) 군고구마를 가끔 사다 먹곤 한다. 군고구마 맛과 향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 온기에서 내가 자랐던 고향의 아늑한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고, 어머님의 따뜻했던 정을 마음 속에 품어보기 위함이다.

누구나 비슷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겠지만, 매일 자연과 벗하고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간들은 그 많은 추억과 경험에서 마음 속에 나만이 간직하는 풍요를 즐기고 있다. 오래 잊고 있었던 자그마한 추억들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한 장면과 연결될 때, 수 십 년을 뛰어 넘어 옛날로 돌아가는 기적 같은 경험을 자주한다. 내 마음의 풍성함을 느끼고 그 많은 것을 내 머릿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해준 내 가족과 고향 그리고 항상 나를 변함없이 맞아주고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자연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그 추억을 다시 되뇌고 아름답게 마음속에서 각색하는 것은 순수한 내 마음의 몫이다.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나름대로 그리는데 그 누가 딴지를 걸 것인가. 혼자 그 옛 추억 속으로 들어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래서 우리 삶은 고난보다 행복의 순간이 더 많은가 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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