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54)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욕심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꼭 필요하지만
사욕인지 공익 위한 욕심인지 구분해야

[식품저널] 여러 종교에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정신수양의 첫 번째라고 얘기한다. 내 것을 챙기지 말고 남을 사랑하며, 측은히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가진 욕심이 가장 내려놓기 어렵고, 인간다움을 해치는 요인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욕심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이 공통으로 가진 본능이고, 이 본능에 따라 지금까지 생존하였으며, 노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욕심이 발동하는 대상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동물은 첫째, 먹이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짝을 독점하기 위해 싸움도 불사한다. 인간의 욕심은 동물보다 범위가 훨씬 넓다. 동물적 욕심인 먹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인류 출현 이래 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과 이성을 독차지하려는 마음까지 합하면 지능이 발전한 것만큼 욕심도 다양하다.

인간에게서 이 욕심을 없애면 계속 생존할 수 있으며, 도전과 진취적인 행동이 가능할까? 무기력한 사람을 우리는 좋게 말해 욕심이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움에 도전하려는 의식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욕심을 갖고 있으나, 그 욕심을 부리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난다. 나만을 위한 욕심은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필연적인 속성이 있으나, 공동의 공익을 위한 욕심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예를 들면 공부를 잘 하기 위한 욕심, 이것은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운동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욕심은 나의 성취욕을 만족시키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주위에 자극제로 작용한다.

세상 만사 과욕은 결국 자기에게 불행을 불러들인다. 정당하면서 공익을 위한 욕심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나, 그 욕심이 개인을 향하면, 개인은 물론 개인이 속한 집단까지도 큰 피해를 준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리는 헛된 욕심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나 국가까지 위태롭게 하고, 더 나아가면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된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 우리 인간에게는 주어진 수명이 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거나 세계를 움직일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한순간이요, 지나고 나면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아는 때가 되면 늦다. 석화광음 몽일장(石火光陰 夢一場))이라, 한순간이다. 이 한순간을 위해 헛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는가?

욕심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나, 그 욕심의 목적이 개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공익을 위하고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옳고 그름이 자연히 판단된다.

인간의 본능인 욕심을 모두 털어내고 초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선지자는 욕심을 버리기보다는 관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이것이 허욕인지 모두를 위한 것인지를 구분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면, 허황한 욕심이 남긴 불행은 미리 막을 수 있고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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