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51)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내 그림을 잘 구성하여 마무리하고
더는 덧칠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으면

[식품저널] 출생이 있으면 마무리도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250억 명 정도가 지구에 살다가 이생을 마감하고 크든 작든, 누가 인정하든 아니든 자기의 흔적을 어디엔가 남기고 사라졌다. 그 흔적이 남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어느 시간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고 이것이 그들만의 고유한 작품이 될 것이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산 것도 내가 꾸밀 전체 내 작품에서 한구석을 차지할 것이며, 그 흔적을 지금 이 순간도 만들고 있다. 지구에 현재 72억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고유하고 독특한, 자기만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고유하고 유일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물론 시간과의 합작품이긴 하지만, 일생 만들어 놓은 내 흔적은 결코 다시 수정할 수 없는 영원한 나만의 기록이요 남긴 자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으며,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뒤돌아보았을 때 누가 감히 그 인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기준과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서로 기준이 다르니 상대평가는 불가능할 것이다. 종교에서 세운 기준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준 자체도 결국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것이니, 완전무결하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개개인이 만든 삶의 작품은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기준이 없으니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유일한 작품일 뿐이다. 여러 분야의 예술 작품은 그 시대가 안든 나름대로 가치로 평가하고 서열을 매길 수는 있지만, 우리 삶의 가치는 어느 기준으로도 평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아니 된다고 여긴다.

자연에서는 해가 뜨고 지며, 때론 흐리다 비가 오는가 하면, 쾌청한 가을 하늘로 나를 맞는다. 이것이 내 그림의 한 편이 되고, 이들이 쌓여 인생의 한 권 책이요, 나만의 작품으로 남는다. 그 누가 이 작품을 보고 감상할 것인가는 의미가 없다. 그저 있었다는, 존재 그 자체로 뜻이 포함돼 있다.

이미 만들어진 성과물은 내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순종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나는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권력을 갖고 호령했던 사람도 결국 자기만의 작품을 남기는데, 그것 자체로 끝이 나고 더 이상도 없다. 또 다음 세대가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고 했는데, 이 구분이 필요한 것인지, 살고 죽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시작과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가 아니겠는가. 오늘 또다시 나에게 만들 작품의 구성을 하라고 아침 해가 비친다. 눈을 떴으니 생활이 시작되고 만들어질 내 작품의 조각을 메꾸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지.

이제 내 속에 시간이 축적되니 내가 만들었던, 만들어가는 것의 형태가 조금은 보인다. 만들어진 것 보다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더 궁금하기는 한데 어찌 그것을 미리 볼 수가 있겠는가. 만들어 놓고 기회가 있으면 그냥 감상이나 할 수 있는 바람인데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마무리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내 몫이 아니고 남아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 그러나 과연 그 누가 관심을 두겠는가. 그냥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고 오늘 할 일이나 충실히 하고 싶다. 이 시각 어느 쪽 구석에 조각을 맞춰 가려는 지는 모르지만, 내 그림을 잘 구성하여 마무리하고 더는 덧칠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경지까지 다다랐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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