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48)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진정한 웃음과 미소, 본인은 물론
같이 있는 사람에게도 긍정의 에너지 안겨

[식품저널]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는 곳에서 심판을 받는다면 심판자가 선악의 기준으로 개개인을 평가하기보다 평생 기쁘게 웃었던 웃음의 양으로 기준을 삼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유쾌하고 맑은 웃음은 본인은 물론이지만 듣고 보는 사람까지도 즐겁게 한다. 웃음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선 상대에 대한 악의는 전연 없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축복이요, 행복을 느끼는 원천이다.

살아가면서 웃음만으로 대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아마도 불쾌한 것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마음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조주가 있다면 웃음을 인간에게만 준 이유를 알겠지만, 그냥 미루어 짐작컨대 먹고 사는데 어려움과 생로병사의 고통을 주면서 측은하여 인간에게 주신 위로의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만약 우리 삶에서 웃음이 없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메마르고 건조하면서 삭막하고 매사가 삐걱거리는 생활이 되지 않을지. 어린아이의 엄마를 향한 천진스런 천사 같은 미소며, 어린 여학생들의 티 없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초등학교 교정에서는 왁작거리는 속에서도 돋보이는 경쾌한 웃음소리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감정이 잔잔히 전달된다. 행복한 웃음이다.

소리 나는 웃음과 함께 소리 없이 짓는 미소 또한 아름답다.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에서 시공을 넘어 전달해 오는 완전한 미소는 우리 선조들의 작품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한 경지를 넘어선 종교인이면서 예술인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이다. 

여러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존안에서도 조금씩은 다르나 완전한 미소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미소를 접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피안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감동을 받는다. 또한 무주구천동 탐방로 가는 길옆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30여 석불에서 다양한 천년의 미소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웃음과 미소는 모두 결이 다르다. 호쾌한 웃음으로 본인의 즐거움을 표시하지만 같이 있는 사람에게도 전파되어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리 없는 미소라 하더라도 그 의미가 행복으로 전달되면 우리는 즐거움을 공감한다. 아마도 가장 나쁜 웃음은 비웃음, 업신여기는 웃음이다. 특히 개인 잇속에 매인 정치인들에게서 자주 느끼는 가식이 가득하고, 진정성이 없는 웃음은 즐거움보다는 역겨움을 느끼게 하고, 다시 대하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든다.

남을 속이거나 대가를 바라고 웃는 웃음은 가식으로 가득 찼으니 어찌 상대가 알지 못하겠는가. 슬픔에 젖어있는 상가에서 웃는 사람은 없다. 그 웃음이 결코 상주를 즐겁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서도 많은 사람이 유쾌하지 않는 상황에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웃는 웃음은 오히려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진정한 웃음은 본인에게는 물론이지만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안겨준다. 어느 상황에서든 긍정의 힘으로 웃음을 잃지 않을 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존경한다. 결코 헤픈 웃음이 아닌 진정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좋아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슴에서 우러나서 즐겁게 웃는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나 지위가 올라가거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근엄함 외에는 상대의 마음을 파고드는 진정한 웃음이 없어진지 오래다.
어려운 것만 접해서 그러는 지는 모르나 진정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처칠이나 링컨 같은 큰 정치가들은 유머를 잘 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상대를 웃게 할 수 있는 수양이 되어 있는 분들이다. 즐거운 웃음을 웃게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생을 마무리 하는 순간에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의 양을 측정할 수 있으면 살아온 삶의 등급을 매기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웃음의 양을 무게로 할 것인가 질로 할 것인가, 아님 시간으로 할 것인가는 절대자의 기준에 따라야 하겠지만, 선악으로 구분하여 지옥 천당을 나누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진정한, 즐거운 웃음의 무게를 쉽게 잴 수 있는 AI 저울을 만들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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