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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산책] 맷돌 돌리는 손잡이 ‘어처구니’를 아시나요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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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1  10: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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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수십 년 전 내 고향으로 날 끌고 가는 ‘어처구니’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한 젊은 날에 머물러 있는 나

[식품저널] 우리말 중에 같은 말이나 여러 뜻으로 이해되는 것들이 많다. ‘든다’는 물건을 들어 올린다는 뜻도 있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든다’라고 한다. 샘은 물을 깃는 곳이기도 하지만, 질투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같은 말인데 뜻이 다른 경우가 많다. 또한, 말이나 상징적인 뜻을 말하는 경우도 많다. ‘똥 밟았네’는 나쁜 기분을 의미한다.

아마도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이없다’는 속된 말이라고 하는데, 황당하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다른 의미로는 궁궐 처마 끝에 흙으로 빚은 동물들을 올려놓는데, 이들을 어처구니라고 한다. 궁궐의 처마에 어처구니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다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더 친근한 뜻은 옛 우리 가정집에서 즐겨 쓰던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한다.

지인이 운영하는 음식박물관을 방문했다가 오랜만에 어처구니를 만났다. 오래된 맷돌을 돌리기 위한 손잡이로, 거칠게 다듬은 나무 손잡이가 ‘나 여기 있다’는 듯 두드러지게 맷돌의 한쪽에 바짝 서 있다. 정답고 친근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이 수천 번씩 갔을 우리집 맷돌에도 이 어처구니가 제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맷돌에 얽힌 기억에서 내가 할 일은 이 녀석이 오래돼서 헐거워졌을 때 쐐기를 박아 단단히 고정하거나, 더는 못쓰게 됐을 때 갈아 끼우는 일이다. 적당한 나무토막을 구해 자귀로 다듬어 매끈하게 만든 다음 맷돌 구멍에 맞게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그때는 그냥 맷돌 손잡이라고 했는데, 이 녀석의 진짜 이름은 어처구니다. 맷돌질하려는데 손잡이인 어처구니가 빠져버려 없다면 순간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당황스럽거나 황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어처구니없다’로 표현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맷돌을 봤을 때 특정한 감정이 없을 것이다. 그냥 옛 물건으로 치부하겠지. 내 경우 민속박물관에서 맷돌을 보는 순간, 누군가인지는 모르지만 수십 년 전 내 고향으로 날 끌고 간다.

맷돌의 용도는 다양하다.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밀이나 호밀, 혹은 보리를 수확해 국수나 수제비, 개떡, 녹두빈대떡을 만들어 먹으려면 가루를 내야 하는데, 이 맷돌이 없다면 가루를 만들 수가 없다.

오른손으로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를 잡고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리면서 어처구니가 꽂혀있는 반대편에 움푹 뚫린 구멍에 곡식을 넣는다. 물론 계속 돌리고 있으니 재빠르게 맷돌이 돌아가는 순간에 구멍에 곡식 한 줌을 넣어야 한다. 어머니는 계속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날렵하게 구멍에 곡식을 넣는다. 돌리고 넣는 박자가 맞지 않으면 곡식을 흘리게 된다.

이 맷돌의 또 하나 용도는 불린 콩을 갈아 콩국을 만들거나 그 국물로 두부를 만드는 일이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국을 먼저 만들어 체에 걸러 비지를 분리해 낸 것을 이용한다. 맷돌과 어처구니에서 내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으니, 나는 복 받은 추억을 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시골에서 성장기를 보낸 많은 사람은 옛 물건들을 접할 때마다 순간 수십 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 옛날을 추억하게 된다. 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훈훈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아 내가 썼던 농기구와 일상 물건들, 친근함이 가는 것들을 보며 교감하고, 옛일을 추억하며 회상에 젖는다.

베틀에서 무명천과 모시 베를 연상하면서 달가닥거리는 베틀 소리를 듣는다. 이들을 통해 고향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요 푸근한 마음의 자산이다. 쟁기며 보습, 호미와 괭이를 보는 순간, 그냥 이것들을 들고 논밭에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지나간 시간이고 나이 먹은, 추억하는 나만이 여기에 서 있다. 그래도 아직 이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한 나는 늙지 않고 젊은 날에 머물러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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