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세로로 구분해보면 서쪽은 넓은 평야 지대로 논농사 중심의 식량작물 재배가 발달했고, 동쪽은 산악지대라 과수나 임산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벼ㆍ보리ㆍ콩 등 식량자원은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보존기간이 비교적 긴 편인데 과일이나 채소 등은 오래 보존하기 어려워 상온보다는 냉장 보관해야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과일과 채소는 적기에 출하ㆍ소비해야 하는데, 제 때에 소비하지 못한 것은 가공해서 보존 기간을 늘리고, 가공식품으로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가공되는 대표적인 것이 잼과 퓨레이다. 잼과 퓨레는 잘 활용하면 농산물의 이용률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늘릴 수 있어 농산물 유통체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채 가공 전에 식물 조직 이해해야
과일은 먹기에 적당한 당도와 수분을 가지고 있어 사람에게 좋은 먹거리가 된다. 사람에게 좋은 것은 미생물에게도 먹기에 좋으므로 과일은 수확 후 얼마 지나면 쉽게 변하고, 후숙이 일어나 물러지며, 조직 내 유기화합물이 대사 분해되어 조직뿐만 아니라 구성성분도 빨리 변한다. 과채류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유통 중 손실이 많이 발생하고, 경제적 손실도 증가하게 된다. 과일과 채소류는 손실이 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걸까? 원인을 찾기 위해 채소와 과일의 기본 조직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과채류의 공통적인 기본 조직은 유조직 세포와 중간 박층막, 기타 세포조직 등을 들 수 있다. 과채 가공 시 물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부위는 중간 박층막으로 세포와 세포 사이를 결합시키는 시멘트 역할을 한다. 과일 성숙 과정에서 처음에는 젤리상 펙틴화합물이 중간 박층막으로 형성되다가 차차 이 막에 섬유소가 유입되어 세포막은 단단해지고 중간 골격은 강화된다. 과일이 미숙할 때는 펙틴 중합체의 사슬 길이가 길고 불용성인 프로토펙틴이 많으므로 다소 딱딱한 조직을 갖게 되지만, 성숙됨에 따라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되면서 펙틴이 생성된다. 이후 과일이 다 익게 되어 수확한 이후에는 저장하는 동안 펙틴 물질이 분해되면서 중간 박층막이 약화되거나 파괴된다. 이것이 과일이 물러지는 현상의 원인이다. 한편, 과일이나 채소를 가열 처리하면 프로토펙틴과 펙틴 중합체가 분해되면서 부드러워진다.

펙틴이 있기 때문에 원칙상 모든 과일과 채소는 잼과 퓨레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나이를 많이 먹게 되면 리그닌 등 목질 섬유소가 중간 박층막에 유입되어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늙은 채소는 섬유 세포벽에 목질 섬유소가 축적되어 딱딱함이 커지는데, 목질 섬유소는 가열해도 물러지지 않으므로 펙틴이 있어도 잼이나 퓨레를 만들기 어렵다. 아로니아는 과육에 리그닌 함량이 높아 맛이 떫고 쓰다. 따라서 이들 리그닌의 작용으로 인해 잼이나 퓨레 가공이 어려운데, 만약 잼을 만들고자 한다면 리그닌을 제거한 다음에 가공하는 것이 적합하다.

다양한 과일로 잼과 펙틴을 잘 만드려면
잼을 만들 때 펙틴을 꼭 사용해야 잼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원래 펙틴은 모든 과일과 채소에 다 존재하므로 펙틴을 꼭 첨가할 필요는 없다. 시판 중인 여러 종류의 잼에 펙틴을 넣는 이유는 원료 수급상 냉동 퓨레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냉동퓨레는 펙틴이 많이 파괴되어 목표로 하는 균일한 젤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펙틴의 첨가가 필요하다.

퓨레는 과일을 갈아낸 후 껍질과 씨를 분리하여 만드는데, 파쇄하게 되면 열처리 공정이 포함되므로 가공 도중 일부 세포벽까지 파괴되어 중간 박층막의 펙틴과 세포질 내 물질이 제품 내로 혼합 분산된다. 이렇게 갓 만든 퓨레는 잼을 만들던 신선한 과일로 잼을 만들던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유통보관을 위해 퓨레를 냉동할 경우 얼음 결정에 의해 펙틴이 파괴될 확률이 높아지고, 냉동보관 기간이 길수록 펙틴이 파괴되며, 물리적 힘만으로 무리하게 과일을 분쇄하여 퓨레를 만들 경우에도 펙틴이 파괴되어 전체적인 젤리형성 능력이 저하된다. 수입 퓨레는 이런 이유로 정상적 펙틴 함량이 줄 수밖에 없으나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면 제조나 보관 중에 발생하는 펙틴의 감소량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품질이 더 좋아질 것이다.

또한, 크기가 작거나 표면에 흠집이 나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은 잼이나 퓨레를 만들면 좋다. 이중 낙과나 흠집이 난 것은 변패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세척하고, 오염 부위를 제거한 후 마쇄 또는 파쇄공정을 거친 후 열처리하여 퓨레로 만들거나 설탕 첨가 후 농축하여 가당 시럽 또는 잼을 만든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은 저렴하게 판매하거나 비료, 사료 등으로 싼값에 넘겨 처리하는데, 이런 것들을 한 번 더 가공하여 퓨레나 가당농축액 등으로 가공소재화시키면 추가적인 부가가치 확보와 수입가공품 대체효과 등이 있어 국내 농산업이나 식품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가당농축액 또는 잼은 과일 외에 다양한 농산물가공에 활용돼 식품소재화하고 있는 유용한 기술이다.
 
농산물가공은 식품소재로 생산 우선돼야
6차산업 바람이 불면서 농가에서 직접 가공해 소비자들에게 직거래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 우리 농업의 살길이라고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상품은 가격, 품질, 콘셉트 등 마케팅 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다양한데, 상품화 경험이 없는 일반 농가가 따라가기에는 벅차다. 그보다는 품질규격에 맞춰 생산하기만 하면 식품원료로서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식품가공소재로 만드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지 않다.

과일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가공소재화하여 또 다른 수익원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고품질 과일만 골라 고급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어 전체적인 농가소득이 증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과채가공품 중에서 잼과 퓨레는 다양한 식품에 널리 사용되는 기본적인 소재이므로 그 시장이 작지 않다. 가공소재화로 국산 농산물이 사용되는 새로운 시장을 적극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정광호 ㈜아이엔비 대표이사

정광호 ㈜아이엔비 대표이사는 서울대학교 농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해태제과 식품연구소와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아이엔비는 미강 등 국산 농산자원 유래의 바이오 소재 연구개발 전문기업이다.

<식품저널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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