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27)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낮에 등산하다 보면 우거진 숲과 맑은 공기 등 주위의 자연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즐기고, 펼쳐져 있는 오묘한 산의 경치에 취한다. 이때는 산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친근하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어떻게 이렇게 우리 마음이 변하는가. 조금 전까지 그렇게 정다웠던 주위가 불안함과 익숙하지 않음으로 변하고, 더 지나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낮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조그마한 이상한 소리에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호젓한 밤길을 걸을 때 느끼는 마음 속 두려움의 바탕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무서움의 원인은 내가 접하고 있는 주위가 보이지 않고, 나 스스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 있는 대상을 알지 못함에 따른 불안이고 두려움이다.

어둠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앞으로 닥칠 일을 예측할 수 없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일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고, 친숙하지 못한 것에 불편해하고, 편안한 감정을 갖기 어렵다. 처음 가는 장소에 대해 불안함과 처음 대하는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불편함 등도 아마 이전에 미리 알지 못함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다.

원시시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는 대부분 나를 해치는 적이거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해왔다. 맹수들이 항상 나를 노리고, 적대시하고 있는 이웃 부족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이들의 공격을 물리치지 못하면 나와 내 가족의 생존과 목숨이 위태로우니 본능적 방어 반응이 인다.

이런 위험에 대처하는 태초의 동물적 유전인자가 내 몸 속에 계속 이어져, 나를 지키기 위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둠에 대한 공포는 실로 많은 허상을 보여주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에 도깨비는 어찌도 그렇게 많았던지. 저녁 내 싸웠던 도깨비가 밝아서 보니 빗자루였다는 얘기는 어릴 때 많이 들었다. 또 사람이 죽으면 혼이 나가는데 그 불빛이 밤하늘에 밝게 보였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겁먹으면서 들었다.

그 많던 귀신과 도깨비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은, 본래 있었던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깃불 덕택에 어둠이 우리 주위에서 없어진 결과다. 어두워져 도깨비가 나올 조건이 되면, 모든 거리와 시내, 가정, 사무실에 밝은 조명이 켜지니 도깨비나 귀신이 깃들 수 있는 어둠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훤히 보인다. 이 밝음에서, 어둠에서만 존재 가능한 우리 머릿속의 허상, 귀신과 도깨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도 내일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대비할 수 있도록
갈 길 비춰주는 밝음 주어야”

영화에서 나타내는 혼령이나 귀신들도 모두 어둡고 음습한 밤에만 나타난다. 그 존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물체를 정확히 보지 못한 데서 오는 착시현상이다. 마음 속에 있거나, 골똘히 생각하면 환영을 본다는 것도 같은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야행성을 제외하고는 밤에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에 따른 공포와 무서움 때문이다. 심지어 식물도 어두워지면 쉰다고 하니, 생명체는 모두가 밝음을 찾고 어두움을 멀리하는 속성이 있나 보다.

생명 유지를 위한 본능의 발현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도 비슷하다. 정치가 잘못되고 있을 때 우리는 모두가 불안을 느낀다. 아마도 어둠과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빛은 눈으로 들어오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감정으로,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다. 사회와 정치의 불안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데서 온다. 오늘, 내일, 내년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심지어 오늘은 안전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은, 원시시대 때 인간이 느낀 공포나 불안의 감정과 차이가 없다. 단지 어둠은 빛으로, 물리적인 현상이나 불안은 정신적인 느낌일 뿐이다.

내가 내일을 위해서 오늘 계획을 세우고 대비할 수가 없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독재국가에 사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내 삶이 내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힘으로 달라지고, 그것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겠는가.

우리 정치도 내일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대비할 수 있도록 갈 길을 비춰주는 밝음을 주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면 불안은 해소된다. 요사이 느끼는 것은 너무 밝으면 내 모든 것이 노출되어 불편하기 때문인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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