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23)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 거미에게서
기다림과 끈기라는 지혜를 배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거미를 생각하면 옛 고향집이 떠오른다. 여름날 간밤에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문밖에 나가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감나무와 대추나무 사이에 넓게 펼쳐있는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물방울, 아침 해가 비치면 영롱한 오색의 빛이 난다. 이때 본 거미는 성인 엄지손 한마디 정도로 컸고, 검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작은 거미가 저 높은 나무에 어찌 올라갔으며 나무와 나무 사이는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그 후 여러 글에서 거미는 곤충이 아니고 무척추동물이며 이가 있는 육식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부 남방에는 독을 품은 거미가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충, 특히 모기나 다른 벌레를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짓고 있는 논밭에 나가면 얼핏 봐도 모양과 집을 짓는 방법이 다른 몇 종류의 작은 다른 거미가 보이고, 가장 큰 놈이 집 근처에 있는 거미였다.

근래 정원수 등 주위에서 보이는 놈들은 그렇게 큰 거미 아니다. 몸통에 노랑, 보라색 등 몇 가지색의 줄로 단장한, 몸통이 작으면서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거미집도 고향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집 싱크대 밑에도 몇 마리 작은 거미가 살고 있어 집사람과 같이 매일 안부 전하고 아주 작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아마도 목욕탕 배수관 옆에 사는 작은 벌레가 먹이인 모양이다. 고향집 거미와는 달라 향수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아주 작고 거미줄도 우리가 알고 있는 둥근 거미줄 형태가 아니다. 보기에는 이 녀석들이 그냥 무작위로 집을 짓는 것 같은데 유심히 보면 어떤 원칙이 있는 것 같다.

거미가 거미줄을 짓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신비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몸통에서 가늘고 투명한 끈적거리는 실을 뽑아내어 일정한 형태로 거미집을 짓는지, 줄 간격도 그렇고 씨줄과 날줄을 잘 맞춰 집이 완성되었을 때 기하학적 예술품이 된다.

이 거미줄에는 모기, 파리는 물론이고 잠자리, 혹은 매미까지 걸려들어 거미의 먹이가 된다. 먹이가 걸렸을 때 잽싸게 달려가 자기 거미줄을 동아줄 삼아 칭칭 엮어 메는 것을 보면 자연생태계에서 먹이를 얻는 생명체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장난으로 내가 거미줄을 건드리면 쫓아오지 않고 오히려 피해버리는데, 벌레가 붙으면 여차 없이 달려온다. 흔들림의 차이에서 먹이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그 감각!

또 내가 배울 것은 몇 시간이고, 아니 며칠이건 먹이가 붙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는 그 끈기, 아마도 타고난 천성이겠지만 한 목적을 위해서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기다림의 미학을 볼 수 있다. 내가 목적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끄떡없이, 불만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큰 교훈을 준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우리 삶에서 거미를 닮으라고 하면 지나친 비하가 될런지, 배울 것은 배워야겠지.

근래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보면 거미줄은 무게로만 비교하면 강철보다도 강하고 질기며, 이 성질을 이용하여 유용한 신축성 있는 섬유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로봇의 근육을 이들 거미줄로 만들 수 있다니. 거미라는 생명체에 이런 무한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경외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우리집 세면대 밑에 사는 거미도 가끔은 사는 곳을 조금씩 옮겨, 먹이가 되는 벌레의 이동 경로에 변화를 준다고 생각한다. 또 쳐놓았던 거미줄을 아마도 스스로 먹어 다시 영양원으로 하고, 끈적거림이 더하는 새 줄을 친다. 작은 생명체, 아주 오래전 고향에서 눈이 마주쳤던 거미와 지금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 거미에게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다림과 끈기라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역시 모든 생명체와 자연에서 계속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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