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8)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날씨가 꽤 추웠던 지난 연말, 이색적인 모임이 있었다. 웰다잉 시민운동 창립총회였다. 연말이고 추운 날씨 때문에 많이 모이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행사장에 가보니 500여 석 큰 홀이 꽉 차고 통로까지 서게 되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60세를 넘긴 분들로, 생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를 피부 가까이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삶의 시작, 탄생이 있었으니 마무리하는 끝, 정리할 때가 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순리다. 이 확실한 순서를 알아차리는 것은 아마도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나이가 되어야 피부로 느낄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 식생활과 생활여건의 개선과 육체운동 등 자기관리 덕에 수명은 계속 늘어나 60세는 청년이고, 70은 장년이며, 80을 넘어야 노인 축에 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부 80세를 넘긴 노령기에도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이 늘고 있으며, 곧 100세 수명은 이제 보통인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평균수명 연장순위에서 제일 위에 있다.

이와 같은 장수가 우리 삶에서 축복일까 아니면 다른 형태의 재앙일까. 이는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육체적 수명과 건강이 함께하지 않고 생을 마무리하는 몇 년 사이를 병상에서 지낸다면 이는 재앙이라 아니할 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일생 사용하는 의료비의 60% 넘게 임종을 맞는 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지출된다는데, 그만큼 생의 마무리 단계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종교에서 말하는 저세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이 세상에서 더 살기를 원하는 것은 바퀴 같은 미물까지 포함한 생명체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고, 이를 위해 모든 가능한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일 뿐 분명히 마무리할 때는 온다. 모든 권력과 부를 거머쥐었던 진시황도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고, 지금까지 세계 어느 장수인이라 하더라도 수명은 120~130세까지였으며, 이들도 흔치 않은 희귀한 예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축복받으며 태어나, 생을 부여받은 우리는, 태어날 때 축복과 같이 아름답고 존엄한 마무리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국가에서는 연명의료 조치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을 해 놓았고, 개인적으로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 최후 순간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위엄을 갖추면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도 최근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이런 준비가 내 마지막 가는 길에서 인격파탄이 아닌 존엄성을 유지하며 작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유럽 몇 나라는 존엄사를 인정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우리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의료진의 판단을 받아 존엄사를 인정해 주는 것도, 생을 마감하면서 아름답고 만족한 노을을 즐기도록 하는 마지막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단히 민감한 주제이긴 하나 내가 이 사회에서 더 보탬을 줄 수 없고 짐이 된다면, 쌓아온 인격을 유지하면서 정든 사람들과 기쁜 마음으로 이별하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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