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언의 GMO 2.0 시대, 논란의 암호를 풀다] 25.

▲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그나마 우리나라가 선도 그룹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존 GMO와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기술로 승부해야 할텐데, 유전자 기술을 연구하는 자체마저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연구개발 경쟁력에서 뒤지고, 모처럼 얻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개발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유전자 기술
유전자 가위로 바나나 멸종위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한다. 바나나는 씨가 없어 교배를 못 하고 단일 품종이다. 유전자가 똑같다. 그래서 곰팡이 질환에 의해 한꺼번에 멸종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멸종된 적도 있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바나나의 곰팡이 감염에 필수적인 수용체 유전자를 망가뜨린다면 신품종을 개발할 수 있고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병아리 감별사가 병아리를 감별하여 수컷은 바로 도태시키고, 암컷만 키운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암평아리만 태어나게 하면 어떨까.

유전자 가위로 뿔 없는 젖소를 만들기도 한다. 그동안 목장주들은 젖소의 뿔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소끼리 서로 상처를 입히거나 때때로 인간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젖소 뿔을 잘랐는데 이렇게 뿔을 제거한 젖소의 수가 1000만 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전자 가위를 도입하여 뿔 유전자를 제거하면 이런 번잡함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유전자 가위는 정말 생각하기 힘든 범위까지 활용의 범위가 넓은 것 같다.

유전자 시대는 이제 시작
유전자 가위 기술은 그나마 우리나라가 선도 그룹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존 GMO와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술로 승부해야 할텐데, 유전자 기술을 연구하는 자체마저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연구개발 경쟁력에서 뒤지고, 모처럼 얻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GMO 2.0’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중국이 세계 3위 종자기업 신젠타를 인수하고,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하는 등 합종연합을 이루고 있다.
 
최근 유전자 가위로 폭발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GMO나 유전자에 대한 진지한 이해보다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그저 억누르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GM은 갈수록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오는데 무작정 외면하는 것이 앞으로도 과연 가능할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걸까?
크리스퍼 실험실은 230만원 정도면 차릴 수 있고, 15만원이면 유전자 편집 키트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2015년 양대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가장 뛰어난 과학적 성과’로 크리스퍼 기술을 꼽았다. 예전에 크리스퍼 기술은 덜 정밀했고, 상용화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그런데 최근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이고, 오류도 거의 없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크리스퍼 기술이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는 진짜 이유는 저렴한 비용과 쉬운 사용법 때문이다.

앞으로 이 기술은 HIV와 암 등 질병 치료와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각종 질환 예방과 치료, 신약 개발은 물론 효모의 게놈(유전체)을 편집해 새로운 풍미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등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썩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숙성하는 토마토,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경찰과 군인을 도울 수 있는 근육질의 개, 뿔이 자라지 않는 소 등은 이미 유전자 편집을 통해 존재하는 생물들이다.

캘리포니아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류가 쓰기에 따라 불치병을 치료하는 건강 혁명의 기원이 될 수 있겠지만, 반면 원자폭탄 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크리스퍼 기술을 인간에 적용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윤리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특정 기능만을 장착한 사이보그 같은 인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실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기술은 없다. 다만,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자신의 유전적 미래를 통제할 힘은 경이로운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대면한 적 없는 가장 큰 도전 중에 하나이다.

벌써 의료용 적용이 시작되고 있다
유전질환의 종류는 1만 가지가 넘고, 신생아의 1%가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생식세포에 변이가 생겨 다음 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 유전병의 원인이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대부분 완치가 불가능하다. 유전질환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부모의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다.

2만3000개 유전자 중 단 하나에만 문제가 있어도 흔히 '유전병'이라고 불리는 희귀질환에 걸릴 수 있다. 2000명 중 1명 이하에게 발생하는 유전적 희귀질환은 밝혀진 병만 7000~1만개에 달하고, 전 세계 환자는 약 3억5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인체 DNA를 수정하여 질병을 고치는 유전자 치료가 지난 30년 간의 답보상태에서 벗어나 이제 임상 치료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크리스퍼/카스9 접근법을 비롯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개인의 유전체를 정밀하게 수정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더욱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유전자 치료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17년부터 혈우병, 겸상 적혈구병, 실명, 여러 심각한 신경퇴행성 유전질환, 일련의 다른 유전병들을 비롯해 다양한 골수 및 림프절 암 등의 유전자 치료에서 주목할 만한 꾸준한 임상 치료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유전자 치료가 가장 파괴적이고 다루기 힘든 질병을 치료하는 주류가 될 것으로 생각하며 우리는 현재 이 새 치료법의 전환점에 서있다

오류율 1%에서 1만 배 감소시키는 기술도 개발
최근 캐나다 앨버타대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치료 현실에 좀 더 가깝게 접목시킬 수 있는 새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베이실 허버드 박사는 “우리는 유전자 편집에 사용되는 자연 가이드 분자를 가교 핵산(bridged nucleic acid, BNA)으로 불리는 합성물질로 대체해 유전자 편집 기술의 정확도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2012년 발견된 크리스퍼/카스9이 자연 RNA 가이드 분자를 사용해 1%의 오류율을 내는데, 기존 GMO에 비해서는 매우 정교하지만 인체에 사용하기는 불안했다. 그런데 “BNA를 사용해 카스9 시스템 유도 실험을 했을 때 어떤 경우에는 목표로 한 DNA를 찾아내는 특이도가 1만 배 이상 높을 만큼 극적인 개선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확성에 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아직은 인간의 치료에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 넘어야 할 장벽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장벽이 제거되고 있는 것 같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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