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언의 GMO 2.0 시대, 논란의 암호를 풀다] 24.

▲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크리스퍼는 미생물에 존재하는 반복된 서열을 가리키는데, 크리스퍼의 작동 원리를 응용해 DNA를 자유자재로 잘라내고 새로운 DNA를 붙이는 유전자 가위는 지금까지 개발된 유전자 연구 도구 중 가장 정확하고 사용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가위(CRISPR 크리스퍼)는 지금과 차원이 다른 기술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크리스퍼(CRISPR)’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크리스퍼는 미생물에 존재하는 반복된 서열을 가리킨다. 크리스퍼는 세균의 천적인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구축한 일종의 면역체계로, 80년대 일본 과학자(오사카대학 요시주미 이시노 교수)가 대장균 등 미생물의 DNA 서열을 결정하다가 우연히 발견한다.

그리고 2013년 초 서울대 김진수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 등 5개 그룹이 거의 동시에 크리스퍼의 작동 원리를 응용해 DNA를 자유자재로 잘라내고 새로운 DNA를 붙이는 유전자 가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고, 빠르고, 저렴하다면 승부는 끝
이것은 지금까지 개발된 유전자 연구 도구 중 가장 정확하고 사용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유전자 하나를 잘라내고 새로 바꾸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리던 일이 이제는 며칠이면 된다.

한 번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동시에 손볼 수도 있고, 특정 유전자의 구체적 기능을 연구할 수도 있으며, 줄기세포와 체세포에서 질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교정할 수 있다. 이 중에서 GMO에 응용은 기존에 왜래 유전자 도입 없이 작물 내부의 유전자원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새 작물을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것은 세균의 면역계를 탐사하다 발견된 것인데, 인간의 유전자변형기술이 세균의 면역계 연구를 통해 또 한 차례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유전자 가위를 GMO로 관리하지 않는다
미국은 GMO 종주국이다. 그리고 규제가 강해질수록 유리한 것은 다국적 거대 기업이다. 몬산토(Monsanto)는 세계 GMO 특허의 90%를 독점하고 있다. 새로운 품목이 승인 받으려면 보통 13년이 걸리며, 13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중소 규모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는 좀 다르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진(Y. Yang)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양송이버섯을 만들었다. 버섯의 DNA 코드 문자 2개를 변형해 산화로 인한 갈변 현상에 저항성을 높인 결과이다. 이것이 GMO냐 아니냐를 미국 농무부에 문의한 결과, GMO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GMO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하니 개발에 더 활기를 띌 수밖에 없다.

유전자를 추가하는 것보다 없애는 것이 쉽고 강력하다
벨기에 블루(Belgian Blue) 소는 육종에서 우연히 발견해 개량한 품종이다. 근육질은 많은데 근육섬유가 얇아 육질이 좋다고 한다. 최근 그 이유가 마이오스타틴(Myostatin) 유전자의 변이 때문으로 밝혀졌다. 미오스타틴은 근육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발달하는 것을 억제하는 유전자다. 근육량을 키우는 유전자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량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제거해 인간의 목적에 더 적합한 품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도 이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돼지를 개량하기도 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마이오스타틴 기능을 제거함으로써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적은 수퍼 근육 돼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 돼지시장 규모는 연간 15억 마리인데, 중국이 8억 마리를 소비한다. 중국 사람들은 삼겹살을 싫어하는데 이런 돼지 품종을 허용한다면 돼지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육종에서 가장 큰 혁신은 밀의 키를 줄이는 것이었다
없애고 줄이는 것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육종은 1943년에 노먼 볼로그 박사가 개발한 ‘왜소종 밀’, 일명 난쟁이 밀이다. 보통은 뭔가를 키우려고 하는데, 노먼 박사는 길이가 짧고 단단해, 이삭이 커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왜소종 밀’을 개발해 녹색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1970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왜소종 밀은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밀의 99% 이상을 차지하고, 1961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의 밀 수확량을 여덟 배나 증가시켰다. 그런데 왜소종이 그렇게 유리한 것일까? 사실 인위적인 재배가 아니면 왜소종은 다른 잡초나 벼에 덮여 햇빛을 못 받아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모두 왜소한 환경이라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 측면에서는 쓸데없는 키 크기 경쟁을 없애 그 힘을 낱알을 키우는 데 쓰게 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한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 인간에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는 것은 뭔가를 추가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위력도 막강하다.

대부분 피드백 제어를 받는다
우리 몸에서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것이 효소인데, 특정한 효소가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면 어떻게 될까?

비타민처럼 우리 몸에 합성하지 못하는 물질이 있는데 만약 비타민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삽입한다고 해도 그것을 적정한 수준만 만들도록 억제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기가 더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비타민C는 하루에 60㎎ 정도가 필요한데 그것의 100배인 6g을 만들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다. 체온, 혈압, 혈당, 혈액의 pH 등이 적정수준을 유지해야 건강하지 밸런스가 무너지면 건강은 금방 나빠진다. 그래서 우리 몸에는 수많은 감각수용체와 그리고 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다.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대사는 대부분 최종산물의 농도에 의해 그 물질의 합성경로의 첫 번째 효소의 저해가 일어나게 설계돼 있다. 그래서 최종물질이 적으면 억제가 적어지고 최종물질이 많아지면 억제가 증가하는 시스템이다. 자동차에 액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도 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그 브레이크를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 그 작물에게는 괴로운 상황이어도 인간에게는 유리할 것이다. 가속기를 만드는 것보다 브레이크를 푸는 것이 쉬운 작업이기도 하고. 그러니 한동안 유전자 가위를 통해 억제를 푸는 쪽의 성과가 탁월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유당 합성효소를 없애면...
우리나라에서 두유가 만들어진 것은 유당불내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1937년 정재원 정식품 회장에게 한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를 업고 찾아왔다. 딸 다섯을 낳고 겨우 얻은 아들이라며 살려 달라고 간청했지만 아기는 뭐든 먹이면 설사만 하다가 일주일 만에 죽었단다. 나중에 우유의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콩으로 만든 우유인 두유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우유는 소화가 안 되서 불편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만약에 젖소에서 갈락토스와 포도당을 결합시키는 효소(유전자)를 제거하면 어떨까? 젖소가 락토프리 우유를 만듬으로 소화도 잘 되고 맛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유당(락토스)보다는 포도당과 갈락토스가 감미도가 높아 칼로리는 그대로지만 맛은 좋아질 수 있어 지금 우유 소비 감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콩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면...
호주에선 닭의 유전자를 수정해 알레르기 없는 달걀 개발에 나섰다. 알레르기 질환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에 대한 탐색과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콩은 우리에게 정말 특별한 작물이다. 원산지가 만주 남부지방 즉, 부여와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이고, 한반도의 남과 북에 많은 야생종이 자란다. 콩의 특별한 점은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식물은 탄수화물이 많지 단백질이 많은 작물은 콩을 빼면 거의 없다.

콩의 단점은 날것으로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항(anti) 영양소도 많다는 것이다. 콩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백질 분해효소를 억제하는 물질(Trypsin inhibitor)을 가지고 있고, 피트산(Phytic acid)과 이소플라본, 사포닌 등이 지나치게 많다. 적당히 줄여주면 더 좋은 원료가 되지 않을까?
 
단백질에서 글루탐산 함량은 밀가루 보다 훨씬 적은데 그것을 늘려주면 간장이나 된장의 맛이 훨씬 좋아질 것이고, 지방분해효소에 의해 콩 비린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효소를 줄이면 콩가공식품의 품질이 더 좋아질 것이다.

오메가6의 지방산 비율이 높은 점도 단점으로 꼽히는데, 그것을 줄이면 산화에 안정하고 튀김용으로 쓸 때 트랜스지방도 적게 생겨서 더 좋은 원료가 될 것이다. 이처럼 여러 원료가 단지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을 지나 더 좋은 품질의 원료로 개량하는데 유전자 가위가 훨씬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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