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평판은 문화의 결과물, 과학적 근거 꼼꼼히 따져야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국영양학회 부회장)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한국영양학회 부회장)

의학의 발전과 풍요한 식생활로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식품은 건강에 해로우니 나쁘고, 이런 식품은 건강에 좋으니 많이 먹어야 한다는 충고도 많다. 그런데 좋은 식품과 나쁜 식품에 대한 평판은 믿을 만한 과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영향으로 형성된 결과이기 때문에 실제로 영양학적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발간된 책 ‘Bad Foods : Changing Attitudes about What We Eat’에서 Michael E. Oakes는 문화 속에서 쌓여온 식품의 평판이 영양학적 사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식품의 건강가치에 혼돈을 주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중 감자와 돼지고기에 대한 평판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감자는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로, 특별히 극한 상황의 구황식품으로 여겨졌다. 19세기가 되어서야 감자는 주요한 먹을거리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위상은 낮아서 탄수화물이 대부분이고, 영양가가 낮은 식품으로 다른 채소보다 열등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감자의 영양성분을 분석한 결과, 껍질을 벗기지 않은 흙감자에는 열한가지의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하루 권장량의 10% 수준으로 들어 있고, 단백질도 하루 권장량의 9% 수준으로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영양가치가 높다는 평판을 가진 당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돼지고기는 어떠한가? 냉장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19세기에 돼지고기의 전형적인 조리법은 소금에 절여 햄과 소시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주로 중류층에서 사용되었으며, 건강에 해롭고 소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상류층에서는 이 식품에 곱지 않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엄청난 지방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돼지고기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 돼지고기에 들어있는 지방산을 분석해 보면, 포화지방산보다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더 많으며, 불포화지방산 중에서도 올리브유에 풍부하며 심장에 좋다고 알려진 올레인산과 같은 단일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지방산인 리놀레산의 함량도 높아서 이제 과학자들 간에는 긍정적인 평판을 얻게 되었다.

돼지고기에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이라면 콜레스테롤 섭취량이 높아지면 체내 합성량이 낮아지는 항상성 기전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식이 콜레스테롤 섭취량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준과 관상동맥 심장병에 최소한의 영향만 미친다고 판단되고 있다. 따라서 돼지고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평판은 이제 영양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식품의 평판은 과학적 실증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문화 속에서 쌓여온 결과물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과학적 실증이 만들어지면서 이 평판은 달라질 수도 있다. 특정한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할 때 단지 세간의 평판을 따른다면 오히려 해로운 결정을 할 수 있다.

이제 ‘건강’이 식품 선택의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므로, 식품의 평판이 과학적 실증에 근거한 것인지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과학적 실증을 갖춘 경우 이를 표시 및 광고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발의하였고, 이 법률은 2017년 12월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좋은 취지의 법률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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