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근
식품안전상생협회 사무총장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후배
지난 연말 오랜만에 연락이 된 전 직장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배도 이제 어언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한창 바쁠 때인지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시간이 되는지를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의외로 시원스럽게 나온 대답은 이제 자신도 어엿하게 대기업 부장이 되었으니 옛 상사에게 저녁 한 끼 대접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가 그 후배를 만나서 직장생활을 함께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가볍게 반주도 하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그는 다시 회사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날이 회사에서 정한 소위 ‘가정의 날’이었다. 항상 잔업에 시달리니 이 날 만큼은 일찍 퇴근해서 가정을 보살피라는 의미를 가진 날이다. 솔선수범해야 할 부장의 위치라서 일단은 일찍 퇴근해 옛 선배와 저녁식사를 했지만, 쌓여 있는 회사일을 생각하니 선뜻 집으로 발길이 떨어지질 않은 것이었다.

그날 그 후배는 저녁 6시에 퇴근했다가 10시에 다시 회사로 들어가 잔무를 처리하고 자정을 넘겨 퇴근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후배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과거에 나도 그런 삶을 살았지 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 사생활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소비시장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과 자기 자신ㆍ여가ㆍ자기성장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칼퇴근과 사생활을 중시하고 취직을 ‘퇴직 준비’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 독특한 세대를 ‘워라밸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얼마 전 ‘머니S’가 취업시즌을 맞아 취업포털 ‘사람인’과 함께 이상적인 직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인용해 보면, 취준생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직장’은 단순히 잘 나가는 대기업이 아니라, 탄탄한 복지와 높은 연봉을 기반으로 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 보장, 유연근무제 도입 등을 꼽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인 것이다. 드라마 ‘학교’에 나왔던 대사는 오늘날 취업준비생들의 슬픈 현실을 잘 말해준다. “번듯한 양복에 사원증 걸고 회사에서 준 명절선물로 참치캔, 샴푸세트 들고 퇴근하는 게 꿈이에요.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 나는 언제 할 수 있을까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8’ 출간기념회에서 2018년 소비 트렌드 중 한 요소로 ‘워라밸’을 꼽았다. 그는 “서양의 ‘워라밸’이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뜻한다면 최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선 ‘직장과 개인 생활의 양립’이란 의미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사생활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소비시장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과 자기 자신ㆍ여가ㆍ자기성장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칼퇴근과 사생활을 중시하고 취직을 ‘퇴직 준비’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 독특한 세대를 ‘워라밸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퇴 후의 또 다른 워라밸
젊은 직장인들은 일에 지쳐서 자신과 가정을 위한 시간을 잘 내지 못하는 어려움에 힘들어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면 반대로 여가시간이 너무 많아 스스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또 다른 ‘워라밸’을 고민하게 된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100세 건강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현실은 국민연금을 타게 되는 60대 초반까지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매우 드문 실정이니 스스로 성취감을 즐기는 보람 있는 일거리는커녕, 생업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않는 노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충분한 노후대책 없이 퇴직을 하게 된다. 경제적인 대책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갑자기 단절된 사회적 인맥과 많아진 여유 시간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즉, 이 또한 일과 삶의 균형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까닭이다.

워라밸의 핵심은 자기주도
그럼, ‘워라밸’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 일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휴식과 레저를 즐기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는 의미이다.

‘워라밸’의 핵심은 자기주도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가치관과 기대에 비추어 만족스러워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삶의 만족도 또한 그러하다. 자기가 주도하는 일과 삶은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높을 것이고, 타인에게 끌려서 하는 일과 삶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주도는 자신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작년에 핫 트렌드였던 YOLO(You Only Live Once)와 1코노미(1인 가구 맞춤형 상품)도 이러한 자기주도의 ‘워라밸’과 그 궤도를 함께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은 이처럼 급격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하드웨어적 IT 변화에 더해 일거리와 삶의 패턴 변화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혁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트렌드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변화의 물결을 인식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나 자신의 ‘워라밸’을 정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청년이나 중장년 누구에게든 어려운 숙제이지만 반드시 스스로 풀어내야 할 삶의 명제이기도 하다. 

손세근 식품안전상생협회 사무총장은 평생 현역을 추구하는 AND의 의미로 ‘N칼럼니스트’란 퍼스널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CJ제일제당 재직 당시 CS(고객만족)총괄임원을 역임했으며, 미래변화와 인생다모작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을 하면서 관련 칼럼을 쓰고 강의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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