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가을은 떨어진 낙엽처럼 멀어져갔다. 노랗고 붉게 타던 단풍잎은 낙엽이 되어 도로변과 숲속에서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돌아선 마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면 따뜻한 바람이 불거란 기대로 남녘으로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고 새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1. 남녘의 차가운 산길
오늘 산행은 거창의 남령에서 시작한다. 남령이라는 고개에서 바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옷을 벗은 나목의 숲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스친다. 이렇게 추운 계절엔 가파른 오르막의 산길을 힘차게 올라야한다. 30여 분 힘차게 오르니 몸이 풀리고 이마엔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오늘 오를 첫 번째 산은 월봉산(1279m)이다. 월봉산에 오르는 구간은 암릉 구간이 많아 밧줄을 잡고 오를 곳이 많이 있었다. 특히 7부 능선 쯤 되는 지역부터 어제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바로 어제 밤에 내린 눈이라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을 걸었다.

깊고 깊은 숲속의 눈길은 깨끗하였다. 도시에서 눈이 내리면 지저분하지만 숲속의 눈길은 다시 걷고 싶은 매력적인 길이다. 하늘에서 내려준 새하얀 눈을 밟으며 월봉산의 정상에 설 수 있었다.

 

2. 길고도 긴 눈 쌓인 산길
월봉산에서 길고도 긴 능선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 남녘의 산이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새하얀 눈길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큰목재, 수망령을 거쳐 금원산(1353m)에 도착하였다. 금원산(金猿山)은 옛날 이 산에 살고 있던 금빛 원숭이를 원암(猿岩)이라는 바위에 잡아 가두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금원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산은 산에 연하여 거대한 산맥이지만 저 멀리 아래쪽은 거창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금원산의 표지석에서 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기백산을 향하여 떠났다. 멀고 먼 능선의 산길을 걷다보면 특이한 바위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술을 빚는 누룩더미 같이 생긴 바위들이 여러 층의 탑을 쌓아 올리듯 쌓아진 봉우리를 갖고 있어 ‘누룩덤’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오름과 내림을 수없이 반복하여 ‘누룩덤’이라 불리는 기백산(1330m) 정상에 도착하였다. 대부분 천 미터 이상 지역에선 눈이 쌓여있었다. 고도가 높아 바람도 차갑게 불어왔지만 새하얀 눈길이 내 마음도 하얗게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3. 남녘의 바람도 차가운 계절
산악회에도 추운 겨울이 오면 재편이 일어난다. 우리 산악회는 봄가을 시즌 때는 많은 산객으로 서너 대의 산악회 버스가 떠나지만 이젠 버스 한 대가 떠난다. 산행 코스도 비교적 긴 코스를 잡는다. 오늘 걸은 월봉산, 금원산 그리고 기백산 코스는 모두 17km로 8시간을 걸어야 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추위와 싸우면서 산행을 하게 된다. 남녘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지만 산을 좋아하는 산객들과 함께하여 좋았다. 추위에 지쳐갈 즈음 따뜻한 봄은 올 것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날을 기대하며 겨울날의 차가운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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