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지난 만추의 숲은 아름다웠다. 노랗고 붉게 빛났던 숲은 어느새 훌훌 옷을 벗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길엔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바람에 따라 흩날리고 지난 만추의 추억을 되씹고 있었다.

1. 나목의 숲길

오늘 산행은 예산의 대치 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을의 뒷동산을 돌아 오르면 숲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가을을 보낸 겨울 숲은 나목 (裸木)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숲은 바람과 새들을 친구로 맞이하며 길고도 긴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나목의 숲이 아름다운 산길을 걸으며 시인 류시화 님의 ‘길 위에서의 생각’을 읊어 보기로 하였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 시인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

나는 시인 류시화 님의 시를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고민하였던 것을 짧으면서도 힘 있게 표현하였다. 나는 오늘도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하여 가야산을 오르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 오를 첫 번째 봉우리인 원효봉 (465m)에 올라서서 들녘을 내려다보았다. 들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라 원효봉에서도 들녘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한바탕 땀을 내어 오르면 가야산 (677.6m)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2. 나목의 숲에 부는 바람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 시인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

가야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중국에서 밀려온 황사도 모두 걷히어 멀리 서해바다까지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한 젊은 부부가 셔터를 눌러달라고 한다. 정성을 다하여 기념에 남을 사진을 찍어드리고 삼거리 (599m)를 거쳐 석문봉 (653m)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가야산에서 삼거리를 거쳐 석문봉으로 가는 산길은 능선의 산길이라 쉬운 산길이었다. 하지만 삼거리에서 석문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구간이라 조심스럽게 전진하였다. 석문봉에 이르기 직전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고 젊은 부부와 함께 점심을 하였다. 안양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는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인생의 긴 여행을 할 그들에게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석문봉과 옥양봉 (621m)을 거쳐 하산하면서 아름다운 나목의 숲을 걸어서 내려왔다.

3. 가을이 남기고 간 것들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새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화려하였던 지난 가을날처럼 세월은 멀어져 갈 것이다. 산악회에서 마련한 자리에서 젊은 부부와 한 잔의 소주를 함께 하였다. 그들은 막 산행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고 계속 산행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길 위에서의 생각’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삶을 함께 하기를 기원하였다. 그들과 한 잔의 소주를 함께하며 지난 가을이 남기고 간 것들을 더듬어보았다.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은 저만치 멀리 가 있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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