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의 땅끝 마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집을 나서니 새벽 비라는 손님이 왔다 간 모양이다. 땅은 촉촉이 젖어있고 하늘은 잔뜩 찌푸려 다시 비를 내릴 태세이다. 늦가을의 비는 몰래 와서 흩날리는 낙엽에 촉촉하게 적셔놓고 떠나버렸다. 도로변에 수북하게 쌓인 젖은 노란 은행잎도 만추의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1. 해안 경관이 수려한 천년 숲 옛길
수원에서 산행 시작점인 해남의 마련 마을에 도착하는데 5시간이 걸렸다. 천안을 지날 무렵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면서 마련마을에 도착할 무렵 모두 걷혔다. 비가 그친 숲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붉고 노랗게 물든 천년 숲 옛길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숲길로 올라가는 길 옆 도랑에는 쫄쫄 물이 흐르고 곱게 물든 숲에서 나오는 향기를 가슴 가득 받아드리며 첫 번째 봉우리인 도솔봉을 향하여 올랐다.

도솔봉을 향하여 오르는 만추의 숲은 아름다웠다. 비교적 평평한 지역에 조림을 하여 나무들이 반듯하게 줄을 서 있었다. 비가 지나간 숲에서 뿜어 나오는 만추의 숲 향기를 맡으면서 도솔봉 (416.8m)에 올라섰다. 여기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내려다보아야 하는데 짙은 해무로 10m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5년 전 쯤 이 산길을 걸었는데 아름다운 해안의 경관은 추억 너머 깊은 심연에서 끌어내어 볼 수밖에 없었다.

도솔암에서 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난간에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는 암자의 지붕을 피하여 자라나고 있었다. 그 나무의 중간부분이 한쪽으로 많이 휘어져있었다. 새벽녘의 비와 짙은 해무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나무들도 만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2. 바위와 돌밭의 달마산으로 가는 산길
도솔암에서 하숙골삼거리를 거쳐 떡봉(421m)으로 가는 산길은 비교적 무난하였다. 곱게 물든 단풍잎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며 산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밭삼거리를 지나며 바위와 돌밭의 산길이 시작된다. 곳곳에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있지만 바위와 돌밭의 산길은 쉽지 않았다. 약간의 비가 지나간 후라 위험성이 높은 산길이었다.

달마산의 달마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에서 왔다. 진리라는 뜻이다. 진리를 찾아 가는 달마산으로 가는 산길은 온통 바위와 돌밭의 산길로 험준하였다.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어렵듯이 진리의 달마산도 쉽지 않은 산길이었다. 5년 전 쯤 왔을 땐 달마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 와 보니 험준하였던 구간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5년 전에 오를 때보단 쉬웠다. 그러나 달마산 (489m)의 정상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 미황사 천년 역사길
달마산의 정상에서 내려가는 산길이 남아있다. 정상에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황사라는 산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미황사에 가까워지면서 산길은 호젓하고 아름다웠다. 아늑한 산길엔 젖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천년 역사길’이라고 한다. 12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미황사의 전설이 있다. 신라 경덕왕 8년 (749년)에 돌로 만든 배가 포구에 닿았고 미황사 이름도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미(美)자는 소의 ‘음매’하는 소리에서 따왔으며 황(黃)자는 금인(金人)의 색을 뜻한다.

미황사의 천년 역사 길을 걸으며 비에 젖은 낙엽의 향기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향기로웠다. 미황사라는 산사에 접어들자 무척 조용하고 아늑하였다. 고요한 산사에서 차 한 잔 하려 했으나 시간이 제한되어 발길을 돌렸다.

땅끝 마을, 해남엔 달마산이 있다. 한반도의 산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다. 그래서일까? 달마산의 정상으로 가는 산길은 쉽지 않았다. 여기에 짙은 해무로 아름다운 해안의 경관도 볼 수 없었다. 내년 봄 연둣빛 잎새가 좋은 달마산을 다시 찾기로 하고 귀로에 올라섰다. 내려오는 길이 5시간이 걸렸으니 올라가는 길은 최소 5시간이 걸린다. 10시간의 산악회 버스를 타야 하지만 달마산의 아름다운 만추는 그것들을 모두 덮고 남을 아름다운 산길이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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