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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박사의 마음산책] 정수가 사랑했던 만추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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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0  08: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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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스산한 가을바람이 분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면 어둠이 걷히지 않고 도로변의 낙엽이 바람에 따라 흩날린다. 얼굴에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계절이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내 친구 정수는 만추의 계절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였다. 그가 사랑했던 첫사랑 미림이가 떠난 계절이기 때문이다.

1. 백암산으로 내려가는 길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에 산악회 버스를 탄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말이면 늦잠도 자면서 집안의 아늑함을 즐겨도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숲속의 맑은 바람과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과 논산의 민자 고속도로를 지나는 중에 스마트폰의 신호음이 울린다. 소백산 기슭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정수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소백산 기슭에도 스산한 바람이 불고 만추의 계절이 찾아왔다고 한다. 집안에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좋은 사람과 가을 이야기를 나누고 올해 농사도 풍작을 이루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정수와 전화를 마치고 차창의 들녘을 바라다보았다. 빈 들녘엔 누런빛을 띄고 있지만 짚을 둥글게 말아서 군데군데 놓인 사료 덩어리가 보인다. 도로에 가까운 산기슭을 지날 땐 온갖 나무들이 어느새 노랗고 붉은 잎사귀로 물들어 있었다. 남녘에도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누구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만추의 계절이 다가와 있었다.

   
 

2. 불타는 백암산의 스산한 가을바람
오늘 산행은 순창의 대가 마을에서 시작하였다. 마을 뒷동산으로 들어서면 바로 가파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엔 낙엽이 쌓여 있고 나무들의 잎사귀들은 노랗게 그리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산악대장의 뒤를 따라서 앞장서서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흘려 내렸다. 하지만 숲속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름다운 숲속 길을 힘겹게 오르며 첫 번째 봉우리인 신선봉 (내장산, 763m)에 올랐다.

신선봉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불타는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른쪽은 내장사로 내려가는 산길이고 왼쪽은 백암사로 내려가는 산길이다. 나는 백암사로 가는 산길을 선택하였다. 능선의 산길을 걷다보면 소둥근재 삼거리가 나오고 까치봉(717m)까지 다녀오기로 하였다. 여기엔 많은 산객들로 붐벼 바로 다시 돌아서 소둥근재 삼거리로 돌아왔다.

이 삼거리에서 순창새재를 거쳐 상황봉 (백암산, 741m)으로 가는 산길은 순탄하였다. 평탄한 산길엔 낙엽이 제법 쌓여있고 때때로 숲속에서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노랗고도 붉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에서 산우와 간단한 점심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S전자에 다닌다는 그는 올해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와 산길을 함께하며 백학봉(651m)을 거쳐 백양사를 향하여 하산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 봉우리인 신선봉을 오를 때 가팔랐던 만큼 내려갈 땐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숱하게 많은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약수암에서 물을 받으려는 산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약수 받는 것을 양보하고 백양사 경내로 내려왔다. 이곳엔 산객 이외에도 가을날의 아름다운 백양사를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이 중에는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3. 정수가 사랑했던 만추의 계절
나는 오늘 힘을 내어 산행을 하였다. 오늘 대부분의 산객들이 7시간 내지 8시간 걸쳐 내려온 산길을 6시간 안에 최종목적지에 들어왔다. 같은 거리를 빨리 움직여서 굵은 땀방울을 흘릴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산행을 마친 후 한 잔의 시원한 막걸리가 좋았다. 함께 한 산우들과 막걸리를 들고 있는데 다시 스마트폰의 신호음이 울렸다. 소백산 기슭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정수가 오늘 산기슭에 심은 더덕을 수확하였다고 한다. 이 만추의 계절이 가기 전에 내려와서 더덕구이로 시원한 막걸리를 나누자고 하였다.

그는 늘 만추의 계절을 싫어한다고 하였다. 그의 첫사랑 미림이가 떠난 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회억하니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계절이라고 한다. 그가 가장 싫어했던 계절이 어떻게 가장 사랑했던 계절로 변화되었는지 더덕구이로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그가 겪었던 사랑의 편린(片鱗)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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