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Y형! 이곳은 가을인가 싶더니 갑자기 쌀쌀함이 찾아왔군요. 이른 새벽 집을 나서면 도로변에 노란 은행잎과 플라타너스 잎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세월의 강물이란 흐르고 난 후 돌아보면 참으로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이국의 땅 캐나다에도 노랗고 붉은 숲이 한창이겠죠. 아름다운 가을날에 늘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1. Y형에게 주고 싶은 시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 시인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Y형을 처음 뵌 이래로 20여 년이 훌쩍 흘러갔군요. Y형이 코넬에 계실 때 우리 가족은 모두 형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를 앉고 있던 Y형의 모습이 너무 편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젠 그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었겠네요.

Y형, 저는 오늘 양산에 위치한 천성산을 오르려고 멀고 먼 길을 떠납니다. 양산은 부산에 인접한 곳이라 당일로 다녀오려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산을 떨어야 한답니다. 산악회 버스로 4시간 반을 달려야하니 왕복 9시간을 차를 타야합니다. 차속에서 눈을 감고 코넬의 Y형 집에서 보냈던 아름다운 추억을 회억하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오늘 산행의 시작점인 홍룡교에 도착하였습니다.

Y형, 산행 시작점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메고 산우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산행의 처음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일입니다. 홍룡사란 작은 산사를 끼고 오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지만 산길엔 벌써 갈색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더군요. 모든 이들이 가을을 느끼면 산은 한 발짝 앞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나보다 5년이나 10년 앞선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듯이 산은 도시보다 한 달 또는 두 달 계절을 앞서가고 있답니다.

 

2. 화엄 늪의 억새 능선

Y형! 이곳 천성산의 화엄 늪에 대하여 설명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천성산 (千聖山)이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 (聖人)이 되게 했다고 해서 천성산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화엄경이란 경전에서 화엄 늪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늪지가 여러 곳이 있지만 고도가 높은 산에 늪지가 존재하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능선의 산길이 나옵니다. 화엄 늪의 억새 능선이 시작되지요. 하얗게 핀 억새밭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군요. 너무 강한 바람이어서 약간의 추위를 느낍니다. 산에서 추위를 느끼면 쉼 없이 발길을 서둘러야 하지요. 산우들과 저는 이렇게 서둘러서 천성산 (원효봉, 922m)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는 억새밭에서 불어오는 맑디맑은 바람을 한 아름 싸서 Y형이 계신 캐나다로 보내드리고 싶군요.

저는 정상에서 맑은 바람을 가슴 가득 받아드리고 억새의 산길을 따라 갔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길을 가다보면 천성산 2봉 (비로봉, 855m)에 이릅니다. 여기서부터 내원사 계곡으로 내려가면 우리는 모두 가을을 느끼게 됩니다. 평탄한 산길의 산비탈엔 노랗고 붉은 단풍잎이 새색시 얼굴처럼 밝게 맞아주지요. 발길에 스치는 갈색낙엽도 가을이 저물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걸으며 내원사란 산사에 이르렀습니다.

3. 가을날의 쌀쌀함이 주고 떠난 것들

산사에도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산사를 둘러싼 산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산사를 중심으로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이 산사를 찾는 모든 이에게 편안함을 줄 것 같군요. 바쁜 일상에 지쳐 힐링 (healing)하고자 템플 스테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경내엔 정진하는 스님들도 있겠지요. 진리를 찾아 출가한 스님들의 정진의 세계에는 참으로 힘든 세상이 있다고 하네요.

이 산사에서 3km를 더 내려와야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은 오고 가는 시간이 무려 9시간이 되어서 산행시간은 5시간 만에 완주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산행 후에는 시원한 막걸리를 산우들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죠. 많은 땀을 흘리고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내 인생의 역사로 장식됩니다.

Y형! 이국의 땅에서 노랗고 붉은 단풍잎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좋은 사람과 와인 한 잔하면서 멋진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곳엔 갑자기 가을날의 쌀쌀함이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Y형이 계신 캐나다에도 가을날의 쌀쌀함이 찾아 왔을지 모릅니다. 계절의 강물이 뭐라 해도 우리 인생의 강물은 쉼 없이 흐르기에 시인 윤동주 님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보내드렸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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