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그토록 무더웠던 지난 여름날이 물러갔다. 애타게 기다리던 가을이 왔다. 가을은 가을비와 함께 가을바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면 얼굴에 스치는 가을바람이 스산하다. 스산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면 잊고 있었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게 된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 시인 도종환, 가을비 ---

 

가을비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였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가을비가 내리므로 우리 인생은 또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아픔이 있었던 자리에 가을비가 내려 아물게 하고 빛남이 있었던 자리에 그리움이 남을지 모른다.

오늘 산행은 문경의 당포마을에서 시작하였다. 이 마을엔 사과밭이 눈에 많이 띄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 뒷동산으로 들어서면 바로 가파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바위로 된 대슬랩 구간으로 밧줄을 잡고 오르게 된다.

오늘 오를 첫 번째 봉우리인 수리봉 (600m)에 오르자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오르며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씻어 주어 오히려 시원하였다. 하지만 수리봉에서 성주봉 (962m)으로 가는 산길이 쉽지 앉았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암벽을 타며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된다. 가을비가 내려 미끄럽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하며 밧줄을 잡고 이동하였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면 또 내려가면서 암벽을 타야했다. 마지막 암벽 구간 500m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숱하게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여 시작점에서 3시간에 걸쳐 성주봉에 다가 설 수 있었다. 성주봉에서 올라온 산길과 문경시 지역을 내려다보면 온통 푸름으로 가득하였다.

성주봉에서 운달산 (1,097m)으로 가는 산길도 쉽지 않았다. 가을비를 맞으며 전진하기 때문에 산길이 매우 미끄럽고 오름과 내림이 무척 많은 산길이었다. 운달산 정상에서 하산하면서 가을비는 더 굵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가을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산길을 걸을 수 있어 더 반겼는지 모른다.

하산지점이 가까워지자 김룡사라는 산사가 나온다. 이 산사의 주변엔 하늘을 가릴 정도의 전나무 숲이 잘 가꾸어져 있다. 이 산사 주위를 도는 둘레길이 있어 이곳을 찾는 분도 많다고 한다. 이 산사에서 10여 분을 더 내려오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오늘 산행의 종점이다. 총 7시간의 산행으로 산행 종점에 이를 수 있었다.

가을이 왔다. 가을바람이 다가오고 가을바람이 스산해졌다. 스산한 가을바람은 지난 여름날이 그랬듯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누군가는 빛나게 할지 모른다. 우리는 겨울비가 내리기 전에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별빛을 향하여 떠나야 한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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