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어제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가을을 몰고 왔다. 그토록 무더웠던 지난 여름날이 한 순간에 가고 새로운 계절이 성큼 다가섰다. 두부모 자르듯 어제까진 여름의 날씨이고 오늘부턴 가을의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먼 길을 나서기에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스산하였다.

가을엔
시(詩)를 쓰고 싶다

낡은 만년필에서 흘러나오는
잉크빛보다 진하게

사랑의 오색 밀어들을 수놓으며
밤마다 너를 위하여

한 잔의 따뜻한 커피 같은 시를
밤새도록 쓰고 싶다

--- 시인 전재승, 가을시 겨울사랑 ---

 

새로운 계절은 위대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힘이 있다. 가을엔 시를 쓰고 싶다고 한 시인 전재승님도 뜨거운 여름날을 보냈는지 모른다. 더위에 지쳐갈 무렵 계절은 가고 초가을이란 새로운 계절이 왔다.

오늘 산행은 경북 수목원에서 시작하였다. 잘 가꾸어진 수목원을 둘러보며 매봉을 거쳐 시명리로 향하였다. 풀 섶에서 올라오는 짙은 풀 향기가 가슴으로 밀려왔다. 나는 비가 지나간 후 산길의 흙 내음과 풀 향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시명리에서 12폭포가 시작된다. 산길을 따라가면서 12개의 폭포가 나오지만 가뭄으로 물이 많지 않았다. 이 12개의 폭포 중에서 여섯 번째 관음폭포와 일곱 번째 연산폭포가 있는 곳이 물도 많고 시원한 곳이다. 연산폭포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볼 수 있으며 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관음폭포가 내연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두 폭포에서 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보경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길고도 먼 길이었다. 보경사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서 너 개의 폭포가 더 있지만 그냥 지나쳐도 좋을 듯하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보현암과 문수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나오고 보경사란 산사가 나온다.

산사를 둘러보고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까진 10여 분 더 내려가야 한다. 오늘 둘러본 계곡에선 씻을 만한 곳이 없어서 산우들과 온천을 하면서 피로를 씻어냈다. 포항에서 저녁 식사 후 영일만에 잠시 들렀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짙푸른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다. 새로운 계절이 왔다 가는 것처럼.

새로운 계절이 왔다. 초가을이다. 시인 전재승님은 가을엔 시를 쓰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도 인생의 시를 써야 한다. 일을 하면서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해야 한다. 떠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계절은 가고 또 올 것이다. 그 계절 속에서 사랑도 익어가고 인생도 여물어 갈 것이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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