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신선, 영양적 가치 함께 할 수 있는 기술 개발해야

박기재
한국식품연구원
저장유통연구단 단장

박기재 한국식품연구원 안전유통연구본부 저장유통연구단 단장

과일과 채소를 구매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맛’이다. 과일에서 맛은‘단맛’과 ‘신맛’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처음 구입할 때와는 달리 보관 중에 ‘단맛’과 ‘신맛’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과일과 채소가 가진 특성에 기인한다.

과일과 채소는 수확 후에도 호흡이라는 생명 현상이 계속되므로 장기간 보관하면 외관이 나빠지고 영양성분과 고유의 풍미가 날아가 영양가와 맛이 떨어진다. 생장 기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성분을 만들고 호흡을 통해 생명활동과 동화작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나 수확 후에는 광합성 작용이 정지되고 영양성분은 호흡작용으로 소모된다.

영양성분의 소모는 소비자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므로 호흡작용을 줄여 영양성분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관온도를 낮추어 호흡을 적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과일과 채소의 대사는 온도의 영향을 받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대사속도가 빨라져 농산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낮춰 보관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가 섭취하는 여름철 열대 또는 아열대 원산 과일과 채소는 영하의 온도가 아닌데도 일정 수준 이하의 온도에서 보관하면 과피나 과육이 동해를 입는 것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거나 상온에서 보관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작물이 저온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저온장해이다. 저온장해는 저온에 민감한 작물이 각 작물에 대한 특이한 한계온도 이하의 저온에 노출될 때 나타나는 생리적 장해로 동결점 이하에서 얼음 결정이 생기는 동해(freezing injury)와는 구분된다. 저온장해를 받기 쉬운 과실과 채소는 호박을 비롯한 열대 및 아열대 원산의 가지, 오이, 토마토 및 고추 등이며, 저온장해의 민감성과 증상은 작물의 종류, 품종, 수확시기 및 저온에서 노출시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식물체 내에서 저온장해의 일차적인 반응은 유동성 있는 액정상(liquid crystalline)에서 젤상(solid gel)으로 막지질의 물리적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발생한다. 이러한 일차적 반응은 막의 세포구획 손실, 용질 유출,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활성 감소, 막 결합 효소의 활성 에너지 증가, 원형질의 유동성 감소, 에너지 공급과 이용률 저하, 광합성 감소, 물질대사의 불균형과 같은 이차적 대사반응을 초래한다. 이때 저온 노출 기간이 더욱 길어지면 결국 영구적인 생리적 장해를 일으킨다.

저온장해 증상은 과피 표면에 불규칙한 막공 형성, 세포질 파괴로 인한 수침 현상(water soaking), 과육과 종자의 갈변현상, 향미 손실에 따른 이취 등이 있다. 바나나의 경우 껍질에 반점이 생기고 과육이 반투명하게 변하며, 복숭아는 과즙이 적어지고 과육 조직이 엉성해지면서 단맛과 풍미가 사라진다. 수박은 껍질에 가까운 과육 바깥 부분부터 반투명하게 변하고 조직이 물러지며 수분이 빠진다. 오렌지는 겉껍질의 색이 변하거나 껍질이 울퉁불퉁해지며, 과육이 반투명해지고 수분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사과는 내부가 갈색으로 변하고 물러지며, 파인애플은 노화현상으로 인해 신선함이 떨어지면서 중심부의 심 주위가 노란색에서 흑갈색으로 변한다. 토마토는 수침연화의 부패 등이 나타난다. 이외에 저온장해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과일과 채소는 아보카도, 완두콩, 오이, 자몽, 레몬, 망고, 멜론, 감자, 호박, 고구마 등이 있다.

과일과 채소의 저장 수명을 늘리기 위해 생리적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저온저장과 동시에 저온장해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과일과 채소별 저온장해 발생 기전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대사적 조절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손실 억제를 위한 저장 전 열처리, 습도 조절, 화학제 처리 및 기체조성 변화를 통한 수확 후 처리기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더 나아가 열화상 진단 기술, 질량 분석 이미징 기술, MRI 기술, UV-VIS-NIR 및 라만 이미징 기술 등을 이용한 장해 작물의 진보적 진단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과일과 채소를 먹을 때 안전, 신선도 및 영양적인 가치를 함께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할 것이며, 이에 생리적 안정성을 통한 장기저장과 저온장해 문제를 해결해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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