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자주감자 꽃잎 지는 초여름이었습니다
아버지 동네 부역 나가시고,
어머닌 오 일만에 드는 이십 리 읍내의 의성장 가시고
오빠들마저 학교에 간 정오는
덕지덕지 고요가 쌓였습니다
아, 풍요해진 고요는 사랍짝을 밀치고 나와
휑한 동네의 구석구석을 마저 채웠습니다
 
--- 시인 김기연, 감자꽃잎 질 무렵 ---

시인 김기연 님의 「감자꽃잎 질 무렵」을 가만히 읽어본다. 나의 어릴 적 시골 풍경과도 무척 흡사하여 몇 차례 조용히 음미하여 본다. 시인이 성인이 된 후 본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릴 적 시골 풍경을 뒤돌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빠들마저 학교에 간 정오는」 이 구절에서 시인이 취학하기 전 육 칠 세의 소녀시절임을 짐작할 수 있고 아버진 동네 부역 나가시고 어머니께선 장에 가시고 소리 없는 고요와 정적만이 온 마을을 채우고 있군요.

 

오늘 시인의 시(詩)로 시작한 것은 계곡의 산행과 래프팅이 어릴 적 시골풍경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뒤편에 조금 높은 산이 펼쳐져 있고 양 옆에 비교적 낮은 둔덕이 있어 결과적으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셈이다. 동네의 앞면에 들녘이 있고 더 나아가면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는 나무다리이거나 돌 징검다리였다. 여름철 학교를 파하고 돌아올 때면 맑은 시냇물에 미역 감고 물장구 치는 것이 여름철의 큰 재미였다.
 
오늘 아침가리골 산행은 인제의 방동약수 부근에서 시작하였다. 산길이 잘 나있고 길섶엔 허리춤까지 자란 풀들이 우거져 있다. 여름철 풀섶에서 풍겨 나오는 풋내가 향기롭다. 향기로운 풋내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며 언덕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조경동 다리까지 조금 내려가면 아침가리골 계곡으로 진입하게 된다.

계곡엔 얼마 전 많은 비가 지나간 후라 수량이 많고 깨끗하였다. 계곡의 양쪽 둔덕엔 아름드리나무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아침가리골의 작은 폭포에 이르기 전에도 수많은 담과 소가 있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에 등산화와 등산복을 입은 채로 들어간다. 흐르는 계곡물을 사이에 두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고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야 한다. 그러면서 아래쪽으로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진하면서 목표지점인 진동2교 지점까지 4시간이 걸렸다.

아침가리골 계곡 산행을 마친 후 내린천 래프팅 장소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30여분 버스로 이동하고 내린천 래프팅에 임하였다. 원대교에서 시작하여 밤골까지 8㎞를 노 저어가는 긴 코스를 선택하였다. 얼마 전 많은 비가 내려 오늘 새벽부터 래프팅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래프팅은 여러 차례 경험이 있어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급류(急流)를 형성하고 있었다. 9명씩 4개 조로 나누어 출발하여 첫 번째 급류가 있는 장수터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이곳을 통과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우리의 보트를 지휘하는 어린 조교의 설명이 뒤따른다.

장수터를 지나 피아시에 도착하기 전 오늘 건너야 할 최대의 거친 급류를 만나게 되었다. 집채만큼 큰 급류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리팀 4척의 보트 중 한 보트가 거대한 파도에 부딪혀 전복되었다. 워낙 거센 급류라서 우리들을 지휘하던 조교나 안전요원도 큰 힘이 되지 못하였다. 거센 파도 속을 100~150m 떠내려가서 모두 구조되었지만 전복된 보트에 탄 산우들이 크게 놀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아시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복된 보트에 탄 산우들이 진정된 후 래프팅의 최종 목적지인 밤골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오늘 아침가리골 계곡과 내린천의 물놀이를 하면서 고향의 시냇물이 떠올랐다. 오십여 년 전 시골의 시냇물과 동네의 고샅은 고요하고 정적이 흘렀다. 시인 김기연 님의 시골과 나의 고향을 떠올리며 아침가리골과 내린천에서 고향의 시골 풍경이 그립게 다가왔다. 마음의 고향인 시골 풍경이 그립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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