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존경하는 농업인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농림축산식품부 가족 여러분!

저는 우리 농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보람을 간직한 채 이제 정든 농림축산식품부를 떠납니다. 1978년 5월 행정사무관으로 출발하여 2017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40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합니다. 긴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40여년은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은 시기입니다. 농업분야는 엄청난 변화와 험난한 여정의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행정사무관으로 여러 부서를 다니며 실무를 익혔고, 유통정책과장, 식량정책과장, 농업정책과장 등 9개 부서의 과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종자관리소장, 농산물유통국장, 주미 대사관 농무관 등 국장으로 7개 기관을 거치면서 고위공무원으로서 책임과 역할,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기획조정실장과 농촌진흥청장, 제1차관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을 거치면서 우리 농업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정무적 노력에 역점을 기울였습니다.

청춘을 바쳐 일한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보람도 있었으나, 아픔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산업화, 민주화, 개방화의 과정에서 우리 농업분야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고 농림공직자가 감당해야 하는 숙명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일했습니다.

사무관 시절부터 많은 파동을 겪었습니다. 쌀 수매가격 기준이 되는 생산비 논쟁으로 야기된 ‘쌀 생산비 파동’을 겪었습니다. 시장과장으로 도매시장을 건설하고, 이른바 ‘농안법 파동’을 마무리하면서 전품목 상장제, 수집상 등록제, 쓰레기 유발 부담금 등 농산물 시장과 유통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통상협력과장, 국제협력과장, 그리고 OECD 근무를 하면서 ‘WTO 이행계획서(C/S) 파동’을 수습하고, WTO 체제 출범에 따른 우리 농업정책의 기본 구조를 마련한 것도 보람으로 남습니다. 농업정책과장으로 45조 규모의 농업농촌발전 대책을 수립하고, 농축협 통합개혁단장을 맡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농협과 축협의 통합을 추진하였습니다.

농산물 유통국장으로 부임하여 최초로 체결되는 한․칠레 FTA 협상을 체결하고 보완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후유증을 가져온 ‘한․중 마늘협상 파동’의 최일선에서 사태수습과 보완대책을 수립한 것도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주미 대사관 농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한․미간 쌀 관세화 협상에 참여하고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막전막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12월 마지막 날, 미국과의 극적인 협상타결과 WTO 통보 등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큰 후유증을 가져오고 통상 담당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마무리한 것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합니다. 한․미 FTA 협상을 미국 현지에서 시작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마무리하였는데 어느덧 재협상이 거론되는 시기가 온 것을 보며 감회가 깊습니다.

농촌진흥청장 재직시에는 현장 실용위주로 청 조직을 대폭 개편하고, “푸른 농촌 희망 찾기” 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농업기술 실용화재단’을 설립하여 현장 실용적 기술 개발과 연구를 뒷받침하여 농업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 10여개 나라에 해외농업기술센터(KOPIA)를 설립한 것도 큰 보람으로 기억됩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농업계 20년 숙원사항인 농협법 개정을 마무리하고, 3개 농식품 관련 검사검역 기관을 통합하며 농림부 조직과 기능을 시대변화에 부응하도록 개편하였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으로 프랑스 파리, UAE 아부다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베트남 하노이, 중국 청도 등에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중국에 물류센터를 건설하여 농식품 해외수출의 전진기지를 구축하였습니다.

우리 농업이 수출농업시대로 가는 기반을 구축하고, 수출 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한 것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국내외 청년의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2천여명의 국내외 학생들이 참여하는 농식품미래기획단(YAFF)을 구성하여 현장을 경험하고 글로벌 마인드와 역량을 갖추도록 한 것은 우리 농업분야의 큰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지난해 9월 5일 제62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우리 농업은 ‘자유민주적 시장경제’의 원칙 속에서 ‘한국형 발전 모델’을 만들어 새로운 길을 가야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농업인의 소득을 증진시키고 농촌을 국민의 생활공간으로 변모시키며 지속적으로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농정목표를 제대로 인식하자고 하였습니다.

품목과 지역별로 다양한 차이를 수용하되, 농업 정책은 실용가능하며(Action), 신뢰(Belief)를 바탕으로, 약자를 배려(Care)하는 ‘ABC 농정’을 추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농정의 큰 방향을 잡고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시급한 현안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유례없는 쌀값 하락과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식품 분야의 피해, AI와 구제역 발생, 산불과 우박, 심각한 가뭄 등으로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고 농업인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농정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떠납니다. 생산, 유통, 소비, 수출, 소득, 농지 등 여러 분야에 평소 구상해온 정책을 추진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누적된 농정 과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웠으나, 68개의 우리부 법률을 개정하였고, 가축 질병을 방지하고 쌀 산업의 구조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126일간 매일 중앙과 지방, 시도관계관이 참석하는 ‘AI 일일점검회의’를 개최하면서, 현장의 문제점을 발굴하고 근본적으로 가축질병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책과 제도의 추가 보완이 필요합니다.

가축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축산농가를 보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방역업무를 담당한 전국의 많은 공무원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힘든 방역업무에 매진하다 과로로 돌아가신 공무원과 유가족, 그리고 유관기관 관계자들에게도 머리 숙여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농업의 가장 어려운 과제인 쌀 수급과 소득안정을 위한 쌀 산업 종합대책을 수립했습니다만, 생산조정 등 여러 분야에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행히 식량원조협약(FAC) 가입 추진으로 쌀의 구조적 과잉을 해소하는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농정’을 실천하기 위해 농정 브라운백 미팅이나 농정포럼을 실시하여 현장 여론을 다양하게 수렴하였습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출범시켜 도농협치의 기반을 구축하고, 농협 사업구조 개편을 완성하였습니다. 농식품 수출 증대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개편하고 농업분야 일자리를 창출하는데도 노력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보람과 아픔이 동시에 남는 지난 40년입니다. 농업분야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훌륭한 업적으로 많은 수상을 하였고 우수한 경영평가도 받았습니다만 아픈 추억도 남아있습니다. 나라를 뒤흔드는 큰 파동의 중심에 서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파동이 날 때마다 장․차관이 경질되거나 실무자가 징계를 당하는 고통도 있었습니다.

후배공직자들에게 앞으로는 이런 쓰라린 고통이 닥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가오는 상황에 대해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치밀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할 경우에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정면 돌파할 것을 강조합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각오로 일해야 합니다. 절대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전가하지 마십시오.

하나 더 강조합니다. 우리 농업의 미래는 희망과 비전이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영원히 가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농업의 미래를 아름답게 보십시오. 서양속담에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고 했습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어두운 면보다는 밝고 아름다운 면을 보는 농림공직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4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얻은 귀한 교훈입니다.

친애하는 농업인과 농림축산식품부 가족 여러분!

며칠전, 바짝 타들어가는 가뭄현장과 바닥을 보이는 저수지를 점검하면서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언제까지 우리 농업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가, 기후변화로 내년에는 더 심해질 텐데 농업분야에서 잘 대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현장점검을 마치고 6․25전쟁 67주년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전직 장관과 장성들, 퇴역장교들과 시민들이 함께 부르는 군가를 들으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군복무 시절 목이 터져라 불렀던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구절이 가슴깊이 다가왔습니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진한 감동과 함께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늙고 떠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정든 직장과 사랑하는 후배들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시로 기약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는 왔구나, 온 곳도 모르면서
나는 있구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는구나,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떠나는구나, 갈 곳도 모르면서”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선배로서 여러분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아쉽고 힘든 순간보다는 기쁘고 보람된 시간을 기억하며, 여러분과의 소중한 인연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도와주신 우리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관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가정에 늘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7월 3일
제62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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