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주말엔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원거리 산행이 모두 취소되었다. 예전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을 취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러 해 전 여름철엔 거의 매주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한 경험이 있다. 여름철의 짙푸른 숲에 비가 내리면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오히려 빗속의 산행이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멎는 듯하였다. 하지만 10여 분이 지나자마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빗속의 산행을 마음먹고 나왔기에 오히려 시원한 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걷곤 하지만 나는 아예 비옷을 입지 않고 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는다.

집을 나선 후 여우골 계곡을 지나 경기대에 이를 즈음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드니 많은 비가 내림에도 산행객이 더러 눈에 띄었다. 나처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형제봉에 올라섰다.

형제봉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욱한 안개에 둘러 싸인 도시는 보일 듯 말 듯 하였다. 짙푸른 숲은 창포물에 감은 여인의 머리칼처럼 윤기가 나고 맑아 보였다. 따가운 햇살로 목말라 했던 숲속의 나뭇잎은 생기가 돋아나고 있었다. 빗속의 숲길을 걷는 나도 윤기가 나고 생기가 돋아나는 나뭇잎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해진다.

형제봉에서 토끼재를 거쳐 시루봉으로 향하였다. 산길은 많은 비가 지나간 후라 더욱 더 깨끗하였다. 나무들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노래를 하고 나뭇잎은 빗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즐거워하고 있다. 나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빗속의 행복한 산행’을 하고 있다. 나는 시원한 비를 맞으며 시루봉 정상에 올라섰다. 이곳 정상은 평소엔 산객들로 붐볐으나 많은 비가 내리는 오늘은 나 혼자 편안히 둘러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노루목을 거쳐 억새밭으로 가는 산길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숲속을 생기 나게 적셔주는 고마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약 5시간의 산행 후 종점농원에서 두부김치에 막걸리를 마시고 잔치국수를 곁들였다. 식사 후 광교 호수를 안쪽으로 돌아 다시 여우골로 들어섰다. 이젠 어느 정도 비가 멎어서 산책 나오신 분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빗속의 산행을 하였다. 비는 또 다른 세상을 펼친다. 숲은 고마운 비를 맞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행복해 하는 숲속에 들면 누구나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나는 매주 토요일 원거리 산행을 하고 있지만 그간 빗속의 산행을 하지 못했었다. 나는 오늘 8시간의 빗속의 행복한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였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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