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선 박사
한국식품연구원
식품가공기술연구센터

홍정선 박사, 한국식품연구원 식품가공기술연구센터

보온밥솥에 남은 오래된 밥, 며칠 전 사왔다가 다 먹지 못한 식빵, 상할까봐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떡 등 촉촉하고 윤기 나던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딱딱하고 까끌까끌해진 식감 때문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분의 노화 현상이다.

전분은 식물의 배아에 존재하는 에너지 저장형태로 쌀, 옥수수, 밀, 감자, 보리 등 곡류에서는 전체 구성물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전분은 빵, 쿠키, 떡, 면 등 여러 가지 곡물가공식품에서 고유의 질감과 물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분한 수분이 존재할 때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전분입자가 팽창하고 결정형 구조가 파괴되는 현상을 호화라 하며,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호화로 인해 용해된 전분분자들이 재배열되고 일부 결정형 구조들을 회복하는 것을 노화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베이커리 식품에서 노화로 인해 내상 구조가 단단해지는 현상을 ‘staling’이라고 하며,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전분질 식품의 총체적인 품질 변화를 ‘aging’이라고 한다.

전분노화는 식품 고유의 향미와 조직감을 떨어뜨리고, 소화율을 감소시키는 등 전반적인 식품품질을 떨어뜨리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적으로 30%의 곡류 가공식품이 소비되기 전 폐기되고 있으며, 이 중 빵류의 5%, 떡류의 10%가 노화로 인해 폐기되고 있다.

따라서 전분노화를 억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으며, 특히 냉동한 반죽형태인 냉동생지를 이용하거나 냉장유통 방식이 늘어나고 있어 이러한 환경에 적합한 전분노화 억제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 증가, 경제활동 참여 여성인구 증가 및 쌀 소비촉진 노력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정간편식 또는 곡류가공식품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식품 유형별 품질유지기간 연장을 위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전분노화 억제기술은 호화된 전분들이 재배열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현재까지 전분노화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능기를 가진 화학적 변성전분으로 원료 일부(10~30%)를 대체하는 방법, 내열성 균주로부터 분리한 가수분해 효소 또는 가지화 효소를 처리하여 전분구조를 변형시키는 방법, 하이드로콜로이드, 유화제, 저항전분, 폴리페놀, 당알코올, 올리고당, 단당류 등의 첨가물을 활용하는 방법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화학적 첨가물을 지양하는 소비자 인식과 친환경 식재료에 대한 관심 증가에 반해 물리적 변성 또는 친환경적 방법으로 가공한 전분의 선택폭이 좁고 현재까지 노화억제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친환경 기능성 전분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 노화억제 및 품질 개량을 위해 시판되고 있는 효소도 해외에서 대부분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생산이 가능한 노화억제 효소 개발이 시급하다.

최근 차 유도체와 루틴 플라보노이드로부터 밀과 쌀 전분의 노화억제 효과를 발견한 연구처럼 노화억제에 효과가 있는 새로운 천연물 성분을 탐색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분의 노화에 영향을 주는 수분 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코팅막 포장기술과 노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분질 식품별 저장 및 유통 조건 확립도 고려되어야 한다.

전분노화에 대한 연구는 노화를 억제하는 기술 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서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는 식이섬유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저항전분이다. 저항전분은 전분의 노화가 극대화될수록 더 많이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노화억제 제어기술에서 축적한 연구 노하우와 전분구조 및 노화현상에 대한 이해는 나아가 저항전분을 함유한 다양한 형태의 전분질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노화 유도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특히 2형 당뇨병과 같은 대사성 질환 환자 또는 식이조절을 통해 예방 및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식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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