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 시인 노산 이은상, 가고파 ---

오늘은 소백산 기슭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정수의 고향, 마산으로 떠난다. 그는 고향의 잔잔한 바다를 마음에 두고 무학산을 오르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있는 곳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그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세상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 산행은 중리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부드러운 오르막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산기슭의 비탈에 서 있는 회색빛 참나무에선 벌써 연둣빛 잎새가 손바닥만큼 크게 돋아나 있었다. 사랑의 연둣빛 신록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정수에게 연둣빛 신록의 소식을 전하였다. 고향의 소식에 반가워했고 소백산 기슭엔 아직 두 주 정도 기다려야 신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연둣빛 신록을 가슴에 담으며 마재 고개에 올라섰다. 여기서부터 남쪽바다의 그 파란 물이 눈에 들어왔다. 정수가 어린 시절 많이 올랐던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 어느 산길보다 평범하고 부드러웠다. 서마지기와 무학산(762m) 정상에 오르는 산길엔 붉게 핀 진달래꽃과 이름 모를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산행을 좋아하는 나에겐 조금 싱거운 산길이었지만, 이 산길을 걸으며 정수의 꽃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첫사랑 미림이의 이야기를 나에게 하곤 했다. 미림이가 감옥 이라면 그 감옥에 종신형을 선고 받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그 시절 갑작스럽게 미림이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지만, 그는 그 아픔 속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해 준 그녀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하여 그 이별 후에도 평생토록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알게 해 준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그는 그 시절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에 쏟았던 순수하고 두근거리던 마음을 평생 지니게 되었는데, 그는 그 마음이 평생의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두근거리던 마음을 배웠던 첫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그의 마음을 미림이의 감옥에 가둬 버리고 바람처럼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기에 옛날 느끼었던 그 ‘첫사랑의 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시인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

나는 무학산 정상에서 남쪽 바다의 파란 물을 내려다보고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 꽃밭을 둘러보았다. 나는 정수가 그토록 연둣빛 잎새처럼 순수하고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꽃처럼 아름답고 정열적인 마음을 지니게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시인 정호승님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그에게 보내고 싶었다.

무학산 정상에서 대곡산(516m)을 거쳐 만날 고개에 내려오기 전 숲속의 벤치에 앉았다. 아름드리 산벚꽃 나무에서 꽃잎이 한들한들 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내 얼굴에도, 내 무릎에도 가볍게 날아 앉고 있었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나에겐 조금 가벼웠지만 내 친구 정수, 그가 사랑하는 사람, 그의 사랑에 대한 애틋하고도 순수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의 산행이 되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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