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꽃길 따라 물길 따라 섬진강 매화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봄이 오면 쫓비산을 중심으로 관동마을의 뒷동산과 청매실 농원의 산기슭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얀색 고운 이불을 덮어 놓은 듯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면 매화의 진한 향기를 안겨준다.

오늘 산행은 관동마을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마을 뒷동산을 따라 오르면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이 그리운 연인처럼 반겨준다. 길가로 뻗쳐 나온 매화나무 가지에 피어난 꽃에 다가간다. 그 매화꽃들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나는 그 향기를 가슴으로 깊이 받아드린다.

이렇게 꽃동산을 따라 오르면 내 가슴은 하늘을 따라 날아간다. 꽃에 취하고 밭둑에 파랗게 올라온 잡초들의 향기에도 취하고 싶다. 오늘 오를 첫 번째 봉우리인 갈미봉까지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오르며 매화꽃 향기에 취해야한다. 차라리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내 가슴에 심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매화 향기에 취하면서 길을 떠나고 싶다.

 

갈미봉에서 바람재를 거쳐 쫓비산(536.5m) 정상에 올라섰다. 섬진강변 쪽을 내려다보면 물줄기가 쉼 없이 흘러가고 바람에 날린 꽃잎이 강물 따라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계절이 가고 세월이 와도 봄날의 섬진강은 꽃길을 열고 그 길 따라 사랑의 길을 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상에서 청매실 농원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그 농원 산기슭에 이를 즈음 하얗게 물들고 있었다. 이 농원의 주인은 홍쌍리 여사이고 농원을 처음 개척한 사람은 홍 여사의 시아버지인 김오천 옹 이었다고 한다. 그는 탄광의 막장에서 번 돈을 모아 고향집으로 돌아와 매실나무와 밤나무 등을 심으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심은 나무가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섬진강의 찬란한 유산을 만들었다. 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변으로 몰려들고 매화 꽃잎이 계곡을 하얗게 물들인다. 오늘날 아름다운 매화꽃을 가슴에 담으려 몰려드는 것은 80여 년 전 김오천 옹이 평생을 공들여 매화나무와 밤나무를 심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매화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매화마을과 청매실 농원을 둘러보면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년 후 그리고 100년 후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매화 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가슴에 심고 귀가하고 싶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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