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오랜만에 멀고도 먼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해를 향한 암자’의 의미를 갖고 있는 향일암(向日庵)과 망망대해의 짙푸른 파도가 보이는 금오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향일암은 일출을 보기 위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고 향일암을 끼고 있는 금오산은 동백나무 숲이 잘 우거져 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니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어느새 매섭게 다가오던 바람도 물러가고 새봄의 바람이 봄의 향기를 물씬 내뿜으며 다가온다. 남녘으로 내려가면서 봄바람과 함께 봄의 손님이 다가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금오산 등반에 앞서 여수 오동도에 들렀다. 작년엔 오동도의 아침을 보았는데 오늘은 낮 시간의 오동도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많은 관광객으로 복잡하였지만 오동도에 밀려오는 파도만은 변함이 없었다. 동백꽃은 피고 지며 이 섬을 지키고 망루에 올라 밀려오는 먼 파도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오동도에서 돌산도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 산행의 시작점은 율림치이다. 오르막 산길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달래 나무엔 붉은 꽃망울이 맺혀 있었고 얼굴에 스치는 봄바람이 본격적인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금오산으로 가는 산길엔 벌써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고 금오산(323m) 정상에 다가가면서 짙푸른 파도가 눈에 들어왔다.

금오산 정상 부근엔 온통 널따란 바위가 널려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짙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망망대해를 응시한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기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로 내가 앉아 있는 섬은 흔들리는 배가 되고 만다. 나는 흔들리는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매섭게 추운 날엔 남국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고 지극히 무더운 날엔 북국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에게 흔들리는 배를 선물한 짙푸른 파도를 뒤로 하고 향일암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숱한 계단을 내려가면 ‘해를 향한 암자’란 향일암을 맞이하게 된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과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나는 망망대해가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짙푸른 파도가 밀려오고 그 파도가 해안의 바위에 부딪히면 하얀 거품을 토해냈다. 하얀 거품은 파도로 다시 밀려가며 짙푸른 물색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밀려오고 밀려가는 짙푸른 파도는 내 가슴으로도 밀려온다. 내 작은 가슴에 철철 넘치도록 밀려오는 짙푸른 파도를 담고 싶다.

나는 이곳을 좋아한다. 짙푸른 파도가 내 가슴을 열어주고 동백나무의 윤기 나는 잎새가 싱그럽게 다가온다. 나는 몇 해 전 이른 새벽에 이곳을 들른 적이 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벽길은 짙푸른 파도처럼 그리고 윤기 나는 동백 잎처럼 깨끗하고 사랑스럽다. 오늘은 망망대해의 짙푸른 파도와 남녘의 봄바람이 내 가슴에 들어오는 향일암의 봄을 맞이하여 더욱 더 행복한 날이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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