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봄이 오는 길목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녘엔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도 매섭지가 않다. 봄날의 숲속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나뭇가지에 머물다 온 바람도 부드럽고 양지바른 곳엔 단단한 땅을 밀어내고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오늘 산행은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오르기 시작하였다. 가파른 계단을 차고 오르면 완만한 오르막 산길로 접어든다. 문암골을 거쳐 형제봉에 이르는 산길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는데 스마트폰의 발신음이 들려온다. 소백산 기슭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정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젠 소백산 기슭에도 언 땅이 녹고 봄기운이 돋아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이 봄엔 말없이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란 시를 보내주었다.
 

이 봄엔 말없이...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꽃 같은 인품의 향기를 지니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 시인 미상, 이 봄엔 말없이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

 

정수의 전화를 받고 산길을 오르다보니 형제봉에 올라섰다. 형제봉 부근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따뜻함이 좋았다. 소백산 기슭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정수는 언제나 그가 사랑했던 미림이의 따뜻한 손길을 갈구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가다려도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며 봄날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소백산 기슭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형제봉에서 토끼재를 향하여 전진하였다. 보다 깊고 깊은 한적한 숲길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길의 나무와 숲에도 생기가 돌고 나뭇잎 쌓인 산길도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걷고 또 걸어서 시루봉(582m)에 올랐다. 광교산의 정상이다. 이곳에도 많은 산객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모두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봄 사람들처럼 보였다.

정상에서 노루목과 억새밭을 거쳐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하는 산길엔 절터의 샘에서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하였다. 지난달엔 이곳 샘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지만 이젠 샘물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샘물에서도 봄이 왔음을 느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다. 남녘의 꽃소식에서도 들려오고 광교산의 숲속에서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백산 기슭에 살고 있는 정수의 봄소식은 마치 새봄이 오는 소리와도 같았다.

어제는 우수(雨水)였다.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이니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이다. 새봄엔 언 땅을 밀어내고 돋아나는 새싹과 나뭇가지에 움트는 나뭇잎이 보여야 봄을 직접 맞이하지만 나는 땅속에서 움트는 새싹과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것으로부터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애타게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봄은 생명이 움트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봄의 나라로 달려가고 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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