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경재배기 Plantui(왼쪽)와 오키나와 셀룰러

어렸을 적 서울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 가면 작은 소쿠리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서 상추를 뜯곤했던 기억이 난다. 옥상을 빼곡히 채운 화분은 할머니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고, 소일거리였을 것이다. 도시에서도 이처럼 농작물을 재미삼아 기르거나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또는 신선한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 기르는 이른 바 도시농업이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도시농업 현황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2000년 기준 88.3%에서 2015년 기준 91.8%으로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통계청, 2015). 도시농업은 도시라는 공간 안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교육적 기능을 가지며,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다원적 기능으로 주목 받고 있다. 2011년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이후 각 지자체에서 다양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서울시는 2012년을 서울 도시농업 원년으로 지정하고, 도시농업 전담팀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정책적인 지원을 펴고 있다.

도시농업은 가정원예부터 도시 근교의 주말농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정부의 정책은 주로 땅을 활용하는 텃밭 형태가 중심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텃밭을 주말농장, 도심 속 자투리텃밭, 학교농장, 공원텃밭, 옥상텃밭, 상자텃밭으로 구분한다. 학교농장과 상자텃밭 이외에는 옥상이나 공원, 가로수 변 등의 유휴지를 사용하는 텃밭 형태로 도심의 비싼 땅 위에서는 확대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또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해지는 텃밭은 집이나 직장 근처에 텃밭이 있다할 지라도 해당 공간까지 거리가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 IKEA 수경재배기

수경재배기로 본 도시농업 확대 가능성
최근 국내외에서 선보이고 있는 보급형 가정용 수경재배기가 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수경재배는 토양을 사용하지 않고 필요 영양소가 들어간 양액과 물로만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으로 대부분 LED 광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텃밭에 매일 가지 않고서도 햇빛이 부족한 직장이나 집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실내 베란다에서 키우는 화분형 혹은 박스형 텃밭과 달리 병해충이 생길 확률이 낮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초기비용도 높지 않다. 작물이나 제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모종 1주에 500~1,000원 내외이며, 한 번 구매 하면 희석하여 수 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액도 500ml 기준 1만원대 미만이다. 추가적인 땅값을 낼 필요도 없다. 수경재배기 가격이 70~80만원대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부담일 수 있지만 이는 보급이 좀 더 이루어지면 차차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가정 내 원예활동이 보편화된 국가를 중심으로 편리성과 디자인을 강조한 수경재배기 제품이 속속 시판매되고 있어서 머지않아 세계적인 대중화가 예상된다. 합리적인 북유럽식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IKEA는 그 어떤 가구 기업보다도 빠르게 가정용 수경재배기를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모종 15개를 심을 수 있는 수경재배 키트를 12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있다. 키트에는 배지, 발아기, LED 전등, 배양액 등 수경재배에 필요한 도구가 포함되어 있다. IKEA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매장에서 바질, 로메인, 치커리 등의 엽채류 씨앗 20여 종을 판매하고 있다. 재배기의 판매는 1회로 끝나지만 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씨앗이나 배양액을 지속적으로 구매하므로 이는 IKEA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IKEA에서 수경재배기를 출시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기존에도 벤처 기업들이 가정용 수경재배기를 선보였지만 세계적인 대중화의 바람을 일으키기엔 가격이나 유통망과 마케팅의 측면에서도 역부족이었다. IKEA의 수경재배기는 최소한의 기능만 있지만, 대중화에 적합한 가격과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할 수 있는 심플한 디자인과 세계적인 유통망을 기반으로 도시민의 마음을 공략하려 한다.

IKEA의 수경재배기보다는 가격대가 높지만 IT와 결합해 편리성을 강조한 제품도 있다. 2014년에 첫 버전이 출시된 핀란드의 플란투이 플랜테이션(Plantui Plantation)은 식물의 성장에 따라 기계의 높이와 빛의 세기가 자동으로 조절된다. 6개의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제품은 현재 약 34만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발아에 필요한 씨앗과 영양분이 들어간 캡슐을 별도로 구매할 수 있다. 일본의 통신업체인 오키나와 셀룰러에서 개발하고 있는 수경재배기(やさい物語, 야채 이야기)도 IT를 접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휴대폰 어플로 재배과정을 제어하고 카메라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제품으로 올해 2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 IKEA 수경재배기

가정용 수경재배기의 역할
국내에서는 경기도농업기술원이 IT와 연계한 가정용 수경재배기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0년 가정용 수경재배기를 개발 및 출시한 데 이어 베란다 전용, 옥상텃밭용, 빌트인 수경재배기 등 도시민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뿐만 아니라 일부 벤처기업 등 개인사업자들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가격대가 높고, 일반 소매점에서 구입하기가 어렵다. 대중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정용 수경재배기가 국내 도시농업 대중화의 마중물이 되려면 제품의 출시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수경재배가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아직까지 도시민들이 알고 있는 도시농업이나 가정원예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도시농업 하면 대부분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인근 공터의 텃밭이나 교외의 주말농장을 떠올릴 것이고, 가정원예는 직장이나 집에서 기르는 화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제품을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 및 서비스가 연계되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기기를 관리해 주는 정수기 렌탈 서비스와 경험이나 정기적으로 지식의 습득 정도를 체크해주는 학습지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어떨까? 적절한 가격에 사용하기 편한 제품 개발과 함께 필요한 모종과 양액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관리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주며, 수경재배와 도시농업의 의미를 전달해 주는 서비스 모델 개발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동민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 선임연구원
고려대학교 식품공학부를 졸업하고, 농업농촌관련 연구소에서 컨설팅 및 교육 전문가로 일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농식품 산업의 가치창출, 소비자 마케팅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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