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멀게만 느껴지던 백세인생이 우리들 가까이 와 있다. 가수 이애란 님의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크게 유행하면서 백세인생은 당연히 우리가 살아야할 나이가 되었다. 예순 줄은 이제 인생의 반을 조금 넘어서고 있다. 아직 저 세상으로 갈 날이 숱하게 남아있다. 나는 토요일을 가다리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무언가 기다리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척 지루하고 따분할지 모른다.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너무나 먼 인생은
또한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오지 않는 인생은
더욱 더 지루할 거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인생을 살려면
항상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그 무엇을 스스로 찾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 시인 조병화, 지루함 ---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 아름답다. 숲속의 맑은 바람을 기다리고 산비탈의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나무들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찾고 또 다시 찾아가는 광교산이지만 언제나 새로움을 보여준다. 나는 숲속의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 옷을 벗고 있는 겨울 산이 언제나 같을 것 같지만 그 날의 날씨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파가 몰려온 날엔 그들도 움츠러들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날아갈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앙상한 겨울나무들의 숲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오늘 산행을 위하여 이른 아침시간에 집을 나섰다. 영하의 날씨이지만 지난 주 강력한 한파가 지나간 후라 봄날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우골과 경기대를 거쳐 형제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들어섰다. 한 무리의 산객들이 앞서가고 있었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백여 명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제치고 오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은행에 다니는 직원이라고 한다.

형제봉에 올라 올라온 산길을 내려다보았다. 수원, 분당 그리고 안양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숲속에도 모두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리란 생각을 하며 토끼재를 향하여 전진하였다. 많은 산객들이 형제봉에서 되돌아가기에 여기서부턴 깊고 깊은 한적한 숲길을 걷는 느낌을 받는다. 산길의 나무에도 가까이 다가가고 나뭇잎 쌓인 산길도 걸어갔다. 이렇게 걷고 또 걸어서 시루봉 (582m)에 올랐다. 광교산의 정상이다. 이곳에도 많은 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정상에서 노루목과 억새밭을 거쳐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하는 산길엔 갈색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가을의 산길처럼 느껴진다. 무릎까지 푹 빠질 정도로 많은 낙엽이 쌓여 있었다. 낙엽에 앉아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시고 하산하였다. 하산 한 다음에도 광교 호수를 둘러 여우골로 돌아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모두 8시간의 코스를 돌아오는 산길이었다.

백세시대인 오늘날 예순 줄에 들어선 나는 언제나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연인을 기다리고 또 일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숲속의 친구들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맑은 바람, 흙 내음, 하늘과 숲속은 언제나 나에게 기쁨과 사랑을 준다. 변함없는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기다리는 마음을 가르쳐준다. 기다리는 마음은 따뜻하여 좋다. 나는 기다리는 마음을 사랑하며 백세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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