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새해 첫 산행으로 먼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첫사랑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듯이 올해의 첫 산행에서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맞이하고 싶었다. 인생의 여행길에서 누군가는 첫 번째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는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운명이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리라!

오늘 산행의 시작점인 남해군 상주면의 두모마을에 도착하려면 수원에서 네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당일 다녀올 산행 코스론 멀고도 먼 길이다. 하여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게 다가온다. 하지만 남녘의 푸른 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을 연상하며 차가운 바람을 견뎌내기로 하였다.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의 희망을 안고고 멀고도 먼 길을 떠났다.

짙푸른 바다와 새해의 기도
이른 아침 오늘 산행의 시작점인 두모계곡 입구에 도착하였다. 짙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녘의 바람이 상쾌하였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시간에 집을 나설 때 힘들었지만 바다의 넓디넓은 짙푸름과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산기슭이 새벽녘의 주저하던 마음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오늘 오를 산의 이름이 금산(錦山)이다. 고려 말 태조 이성계가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여도 효험이 없자 이곳 금산을 찾아와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을 건국하게 되면 이 산을 모두 비단으로 덮어준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비단으로 덮으려 했으나 그 당시 산을 모두 덮을 비단이 없었다고 한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그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쓰게 하여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모마을에서 시작하여 두모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쉽게 오를 수 있고 짙푸른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계곡은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되다가 최근 출입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하여 산길 주위엔 옷을 벗은 아름드리 나목으로 가득 차 있었고 산길엔 누런 풀잎이 무성하였다. 산비탈에서 맞이하는 바람도 짙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욱 더 가벼웠다.

이렇게 산길을 오르다보니 바로 금산(681m)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돌탑으로 쌓은 망대에 오르니 짙푸른 바다가 들어온다. 굽이굽이 짙푸른 바다에 점점이 작은 섬들이 박혀있고 섬들 사이로 푸른 물결이 굽이쳐 이 산의 정상까지 물결쳐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듯이 소원 사항이 있는 사람들이 기도 드리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리암과 새해의 기도
정상에서 단군성전을 거쳐 보리암에 도착하였다. 많은 관광객과 새해의 기도를 위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 도량이고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짙푸른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보리암에서 나도 글을 더 잘 쓰게 해달라는 새해의 소박한 마음의 기도를 올리고 시인 이해인 님의 「새해의 기도」를 읊조려 보았다.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 시인 이해인, 새해의 기도 ---

짙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보리암을 뒤로하고 쌍홍문을 거쳐 내려가는 산길이 남아있다. 금산(錦山)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기도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새해의 첫 산행으로 기도하기 좋은 남해의 금산을 오를 수 있어 좋았다. 오늘 산행의 종점인 재두 산장 부근에선 동네 할머니들이 섬초와 시금치 등 푸릇한 나물을 팔고 있었다. 향긋한 푸른나물을 한 묶음 사들고 바다와 작별을 나누었다.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겨울답지 않은 날씨를 보이다 요즘 제법 추워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그리워진다. 남녘에선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짙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산이 만나는 남해의 금산에선 따뜻한 바람이 있다. 날씨가 추워져도, 세상이 추워져도 비단으로 덮여 있는 남해의 금산엔 언제나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새해의 첫 산행으로 새해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 좋았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