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시인 이원수, 고향의 봄 ---

산골의 겨울은 더욱 더 춥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기 때문이다. 겨울이 깊어 가면 땅도 얼어붙고 추위를 더 타기에 마음엔 언제나 봄날을 그리워한다. 겨울이 깊어 가면 봄은 멀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며 영동 지역의 반야교에서 숲속으로 들어섰다. 겨울 숲은 옷을 벗은 나무들로 시원한 조망을 할 수 있어 좋다. 산길엔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지난 계절을 뒤돌아본다. 그렇게도 무성하였던 숲이 고운 빛깔의 옷으로 바꿔 입었는가 했는데 어느새 빈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기슭엔 거의 눈이 쌓이지 않았으나 5부 능선으로 올라서니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눈길을 밟으며 오늘 오를 첫 번째 봉우리인 주행봉까지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올라야했다. 가파른 산길만 올라도 이마엔 땀방울이 흘러내리는데 눈길의 바람 부는 매서운 추위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주행봉에 올라서니 주위의 온 산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주행봉에서 백화산(933.8m)까지 칼날능선을 따라 전진해야 한다. 이 칼날능선은 눈이 없어도 위험구간인데 눈까지 쌓여서 더욱 더 조심스럽게 전진하였다. 이 칼날능선만 3시간 정도 움직여야 하고 이 능선은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숱한 암벽엔 밧줄에 의지하며 전진하였지만 푹푹 빠지는 눈 쌓인 산길의 숲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온 산이 순백의 나라로 변화되었고 나는 순백의 숲을 따라 백화산(白華山)에 도착하였다. 하얗게 빛나는 산이란 이름에 걸 맞는 것 같았다.

백화산 정상에서 상주의 수봉마을로 내려오는 산길은 비교적 쉬운 산길이었다. 충북 영동의 주행봉에서 경북 상주의 백화산까지 칼날능선의 산길에 비하면 내려오는 산길은 여유를 갖고 내려올 수 있었다. 산골의 풍경이 떠오르는 시인 노천명 님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암송하여 본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 시인 노천명,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고향의 봄’과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의 두 시를 보면 모두 산골을 무대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오늘 산행의 종점인 수봉 마을로 내려왔을 때 소백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 사는 이정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에도 유기농으로 지었다는 쌀 두 말과 까만 서리태 콩을 택배로 보냈다고 하였다.

정수는 마을의 소개도 잊지 않았다. 올해는 소백산 쪽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았지만 계곡엔 수량이 많고 맑은 물이 돌아선 마음처럼 차갑게 흘러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딸 미혜가 내년 봄 결혼하는데 그 전에 놀러 와서 소백산도 한 번 오르자고 한다.

겨울이 깊으면 봄은 멀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소백산 기슭의 작은 마을로 달려가고 싶었다. 봄이 오기 전에 그 산골마을인 소백산에 올라 멀고 먼 산골의 봄을 정수와 함께 기다리고 싶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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