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산엔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도시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똑같지 않듯이 숲속의 하고 많은 나무들 중에 똑같은 나무는 없다고 한다. 산림학자 박상진 교수는 모든 나무에는 사연이 있고 세상에 똑같은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설악산의 한계산성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수원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설악산 입구에 동이 트는 6시 쯤 도착하였다. 한계산성 입구의 숲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가을 분위기로 나는 가을남자가 된다. 산길의 짙푸르던 풀잎들도 어느새 누런빛을 띄고 산기슭의 나뭇잎도 곱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한계산성으로 오르는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가을남자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한계산성에서 조금 오르다보면 밧줄을 잡고 통과해야 하는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옮긴다. 산악대장의 도움을 받으며 첫 번째 코스를 통과하였다.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을 밧줄을 잡으며 차근차근 올라야 할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어려운 코스를 오르며 잠깐씩 휴식을 취하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완연한 가을바람이었다. 5부 능선 이상에선 붉고 노란 단풍잎이 온 산을 태울 듯이 붉게 타고 있었고 산을 오르며 스친 하고 많은 나무들은 모두 자기들의 개성이 뚜렷해 보였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코스를 통과하여 안산(1,430.4m)에 도착하였다. 안산에서 내려다보면 온 산이 빨갛게 불타오르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든 나무들은 모두 자기만의 개성을 띄고 있었다. 고도가 높은 곳엔 한 뼘 크기의 나무들도 있었고 산기슭과 중턱에선 하늘을 가릴 정도의 쭉쭉 뻗은 나무들이 수없이 많았다. 내가 오늘 올라온 설악산에만 수십억 그루의 나무가 있겠지만 세상엔 똑같은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고 하니 산길을 오르며 스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다시 살피게 된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듯이 모든 나무에는 사연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생김새가 다르고 마음은 더욱이 더 다를 것이다. 나무는 그들 나름대로 사연이 있고 세상엔 70억의 인구가 있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똑같은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아 아무 곳에나 널 내려 놓지마
 어디나 다 사막이야

마음아 아무 곳에나 들어가지마
 어디나 다 늪이야
 
 --- 시인 천양희, 마음아 ---

시인 천양희 님의 시에서 보면 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70억 인구의 모습도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고 마음은 더더욱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숲을 걸으며 많은 나무들을 차근히 들여다보았다. 안산에서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내려오는 산길엔 맑고 시원한 물이 흘러 산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주었다. 두문폭포, 복숭아탕 그리고 응봉폭포로 내려오는 십이선녀탕의 계곡 주위에 서 있는 나무들은 복 받은 나무들임에 틀림없다. 이곳 나무들은 계곡의 흐르는 물로 시원할 것이고 홀로 고독하게 느껴질 때 온갖 새들이 날아와 노래를 불러준다.

오늘 한계산성과 안산을 거쳐 십이선녀탕 계곡을 따라 산행의 종점인 십이선녀교에 도착하기까지 약 10시간이 걸렸다. 가을 산의 개성 뚜렷한 나무들을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았고 사람이나 나무나 모두 자기만의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생애를 책으로 엮으면 10권은 족히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나무들도 사람 못지않은 이야기를 갖고 있고 설악산의 깊은 숲속에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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