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정
한국식품연구원 선임연구원

양혜정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센터 장류연구팀 선임연구원

이로운 균(귀신)을 이용하여
나쁜 균(잡귀)을 물리치게 하는 문화

세상의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는 고유의 식품과 그에 따른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 대표 식품은 발효식품으로 장류와 김치가 있다. 그러면 이러한 발효식품은 어떻게 발달하였을까?

사람은 일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며칠 또는 몇 개월까지 음식을 안 먹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한번 먹고 나중에도 또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의 결과가 식품과학 발달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곡물을 다른 동물이나 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저장방법이 발달하고, 음식을 썩게 하는 잡귀(당시에는 무엇이 썩게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귀신이라 여겼지만 오늘날의 미생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염장, 끓임, 건조, 살균 등의 저장방법 발달이 식품과학의 역사이며 식품문화의 역사이다.

이에 따라 각 나라는 고유의 식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바닷가에 사는 민족은 물고기에 소금물이나 염장 기술을 이용하여 저장하였고, 인도에서는 향신료를 이용하여 미생물을 못 자라게 하여 음식의 부패를 막아 왔으며, 시베리아 지역은 차가운 얼음 속에 넣어 저장하여 나중에 먹었고, 중국 같은 경우는 유지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음식을 튀김으로써 미생물을 자라지 않게 하여 오래 저장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연하게도 채소나 음식이 고춧가루나 고추와 같이 있으면 썩은 것 같은데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발효 식품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효시이다. 즉 배추와 같은 채소는 고춧가루와 같이 있을 때 썩지 않고 ‘썩히게 되어(발효가 되어)’ 김치가 되고, 콩이 뭔가 썩어가는 느낌이 있는 데도 먹을 수 있는 청국장이 되며, 된장과 간장은 메주가 발효(썩히게)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착민족인 우리와 달리 유럽은 유목민족을 중심으로 우유를 이용하여 치즈, 요구르트 등으로 썩히어 먹는 등 우리와 동일한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서양은 미생물에 의하여 음식이 부패되는 것을 알고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나중에 음식을 먹기 위한 방법으로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접근을 하였으나, 우리는 미생물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과학적인 접근 보다는 알지 못하는 잡귀나 귀신으로 인식하여 저장성 확보를 문화적으로 승화시켜 식품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다른 나라의 저장문화는 미생물을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향신료를 첨가하거나 튀기거나 얼음 속에 넣음으로써 발달해 왔지만, 우리나라의 발효문화는 나쁜 미생물을 못 자라게 하여 부패를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생물(이로운 균)을 자라게 함으로써 나쁜 미생물과 싸워 이기게 하여 부패를 막고 ‘썩히어’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문화인 것이다. 즉, 이로운 균(귀신)을 불러와 이를 이용하여 나쁜 균(잡귀)을 물리치게 하는 문화이다(以菌治菌).

이러한 과학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장을 담글 때나 김장을 할 때 아무 날짜에 담그지 않고 아무 손님이나 불러들이지 않는 고유의 문화가 있다. 장 담글 때, 잡귀를 물리칠 때 고추를 넣으면 효험이 있는 줄 알고 장독에 직접 고추나 숯을 넣거나 장독 어귀에 고추와 숯을 꽂은 새끼를 둘러 잡귀를 쫓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오늘날 알려진 것이지만 김치, 고추장과 같은 장을 담글 때, 고추의 캡사이신이 다른 유해균을 죽이고 유산균을 자라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장이나 김치에 이로운 귀신(유산균)은 우리 장의 건강과 면역을 증진시켜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니 이 얼마나 우리 조상들이 준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요새는 일부러 유산균을 이용하여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 팔기까지 하고 있다. 유산균 자체도 우리 몸에 매우 좋지만 실은 더 중요한 것은 발효과정에서 생긴 펩타이드, 아미노산, 당, 인지질 등 대사산물이다. 이들은 장의 주된 맛을 내는 성분이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각종 기능성 성분으로 알려져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발효식품인 장을 매우 건강한 식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표적 우리 전통발효식품인 장류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우리 것을 더 사랑하며 앞으로도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식품과학적, 역사문화적 가치 및 건강기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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