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꽃무릇은 꽃이 필 때는 잎새가 없고 잎새가 달려 있을 때 꽃이 없어서 꽃과 잎새가 서로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상사화(相思花)라 부른다. 이 꽃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애틋한 사랑을 해보았을 것이다. 여신은 큐피드의 화살을 모든 이의 가슴에 날려 보내기 때문이다. 견우와 직녀도 칠월칠석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지만 상사화의 꽃과 잎새는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고 그리움만 쌓이고 있다.

오늘 산행은 고창의 연화리 마을에서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마을의 뒷동산에 올라 첫 번째 고개인 마이재를 향하여 올랐다. 숲속의 짙푸름은 여전하였지만 산길 풀 섶의 가을꽃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경계임을 알린다. 가을산은 어딘지 모르게 서로 헤어지는 연인처럼 북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비가(悲歌)를 부르는 가수처럼 슬픔이 가득한 모습으로 살랑거린다. 큰 나무의 나뭇잎은 뭇 잎새들이 모여 향연을 펼치고 하얗고 보랏빛의 꽃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움에 쌓여 있어 보인다.

 

마이재에서 도솔봉을 거쳐 낙조대에 올랐다. 해 질 무렵엔 멀리 보이는 강변 언덕으로 지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한다. 황혼녘의 낙조에 인생을 뒤돌아 볼 일이 있다면 저녁 무렵에 오른다면 좋을 것이다. 도솔봉에서 낙조대로 가는 산길은 평탄한 산길이라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낙조대에서 선운사의 상사화를 보러 하산을 시작하였다. 올해에도 선운사 부근엔 붉은 상사화가 활짝 피었고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이 많은 이들이 내방하여도 좋고 지나간 첫사랑을 회억하여 보기 좋은 장소인지 모른다.

 슬퍼하지 마라.
 네 곁에 없다고 없는 게 아니다.
 네가 피기도 전에 떨어진 잎새들이
 산그늘에 숨어서 너를 보고 있다.
 새가 되어 이골 저골 날기도 하고
 나비가 되어 춤을 추기도 한다.
 가끔은 너를 보며 눈물도 흘린다.
 네 곁에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진실로 그리워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 시인 이재봉, 상사화에게 ---

‘네 곁에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진실로 그리워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고 시인은 노래하였다. 진실로 그리워한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 보일 것이다. 가까이 있어도 진실 된 그리움이 아니라면 멀리 떨어져 있느니만 못하리라. 오늘도 붉게 핀 상사화에 부는 바람을 바라보며 진실 된 그리움을 쌓고 또 쌓아 본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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