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설악의 새벽녘 향기를 맡으러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일 년을 통틀어 봐도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하는 무박산행이라 주중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수원에서 새벽 3시 반에 출발하여 6시경 한계령에 도착하였다. 산악회 버스에서 내리니 강풍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찌나 강한 바람인지 평소에 산객으로 붐비던 한계령엔 텅 비어 있었고 세찬 바람만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계령의 새벽녘은 상쾌하였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산행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숲속으로 들어서려니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강풍으로 설악산의 전 구간을 통제한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설악의 숲속을 느끼러 왔는데 김이 빠졌다. 산악대장들은 긴급회의를 하고 상봉과 신선봉으로 산행 장소를 바꾸었다.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화암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사로 오르는 포도를 십 여분 걸으면 숲속으로 들어서고 가파른 산길을 이십 여분 오르면 바위로 이루어 진 쌀봉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숲속은 시작되고 신선대를 거쳐 상봉으로 향하였다. 상봉으로 오르는 바윗길과 가파른 오르막길에도 북쪽에서 휘몰아치는 강풍이 대단하였다. 잠잠하던 빗줄기가 내려치고 어디에서 시작된 바람이 그렇게도 강한지 꾹꾹 눌러 쓴 모자가 날아갔다. 함께 오르던 두 산우의 모자가 바람을 타고 멀리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산길을 3시간 정도 올라 상봉에 도착하였다. 널따란 상봉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으스스한 바람 속에서 밥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시간 이상 있으면 한 여름이지만 저체온증으로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산우들과 서둘러 신선봉으로 향하였다. 약 30여 분 걸으니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마음이 편안하고 짙푸른 숲과 향기를 즐길 수 있었다.

신선봉을 거쳐 대간령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마장터와 오늘 산행의 종점인 박달나무 쉼터는 편안한 산길이다. 그러나 점심을 먹었던 상봉에서 약 5시간을 걸어야하는 길고 긴 산길이다. 대간령에서 마장터, 마장터에서 박달쉼터 구간은 숲이 잘 이루어져 하늘을 가릴 정도이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도 비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산객의 마음을 외롭게 하였다. 그러나 짙푸른 숲속의 향기는 가슴으로 밀려오고 시인 용혜원 님의 ‘우산속의 두 사람’을 읊조려본다.

비가 아무리 줄기차게
쏟아진다 하여도
우산 속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발목과 어깨를 축축이 적셔온다 하여도
비를 의식하기보다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르익어 간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 시인 용혜원, 우산속의 두 사람 ---

하늘을 가릴 정도의 울창한 숲속을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이렇게 걷는 순간만큼 세상의 온갖 걱정을 잊을 수 있어 좋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해(苦海)는 짙푸른 숲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짙푸른 숲속을 사랑하며 오늘 총 8시간의 산행은 내 인생의 좋은 추억이 되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추억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