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커피보다 화학이 훨씬 매력적이다. 화학을 알면 커피의 향에 대한 이야기는 와인의 향에 대한 이야기에 바로 적용되고, 다른 모든 향에도 적용이 돼 단순하고 명쾌해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밝힌 가장 위대한 지식을 단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만물은 원자로 돼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화학물질이고 식품도 화학물질일 뿐이며 대부분 유기화합물이다. 향기물질도 당연히 유기화합물이다. 따라서 식품 현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지식이 식품화학의 지식이다. 그런데 화학에 대한 이해 없이 식품을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겉모습만 보고 식품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를 핑계로 식품화학의 일부인 향의 화학에 대해 소개했다. 사람들은 화학하면 무작정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 화학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사고나 공해, 환경호르몬 등 부작용만 강조한 이유가 크다. 자동차는 사고가 많지만 사고를 두려워하지 차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현상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화학현상은 분자 현상이고 나노의 초미세 영역이라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해가 많다. 하지만 화학은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 있는 학문으로 만물의 작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가 먹는 식품은 전적으로 화학물이고 식품의 이해는 전적으로 화학현상의 이해인 것이다.

그리고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핵심도 여전히 화학, 소위 분자이다. 생명은 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한다. 이를 공부하는 것을 생화학이라고 하기도 하고 분자생물학이라고도 한다. 분자는 화학과 같은 말이다. 화학에 무기화학과 유기화학이 있고 유기화학 중에 생명과 관련된 화학이 생화학일 뿐이다.

모든 것이 화학인데도 우리에게 화학이 어렵고 낯선 이유는 분자 현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화학현상을 분자식 또는 구조식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완전히 외계어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개발된 언어 중에서 가장 간결하고 명확히 분자를 시각화한 것으로, 알면 알수록 자연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는 형상 언어이다.

그래서 화학 구조식을 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방정식 풀이를 익히는 일이나 독도법을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 방정식만 알면 값을 대입만 하면 맞는 답이 나오고, 지도만 있으면 모르는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화학구조식은 분자(자연)를 있는 그대로 표상한 것이다. 그래서 말로만 공부하면 할수록 서로 상반되는 주장에 헷갈림이 많아지지만, 화학구조식으로 공부를 하면 알수록 현상들이 단순해지고 명쾌해진다. 식품에서도 화학구조식은 진리의 비주얼 언어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화학을 멀리하고 있다.

자연계의 흥미로운 현상, 특히 생명현상의 대부분은 나노미터 크기의 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나노미터 크기의 분자들이다. 세상의 만물은 원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합을 바꾸면 전혀 새로운 성질을 갖는 분자가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밝히는 것이 화학이고 무생물과 생물을 이어주는 것도 화학이다.

분자들이 모여서 폴리머를 만들고 집단으로 작동하면서 생명체를 만든다. 생명체의 실질적인 동력은 원자를 광속의 1/10로 영구히 회전하는 전자에 있으며, 이 힘으로 모든 분자는 심하게 진동한다. 온도와 환경에 따라 그 진동하는 정도만 변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분자 내에 내제돼 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힘을 이용해 자신만의 3차원 모양으로 접히고, 이렇게 해서 생긴 단백질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효소라는 거대한 분자기계(molecular machine)를 만들어 다른 단백질 등을 만든다.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해 만든 ATP로는 분자의 자발적이지만 불규칙한 움직임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정도일 뿐이다. 모든 분자는 자율적이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생명현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외부 환경에 적합하도록 내부 분자의 상호작용을 적절히 조절할 뿐이다. 생명의 놀라운 복잡성과 조화도 사실은 가장 단순한 분자가 활동하는 패턴의 합일 뿐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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