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밭작물개발과 농업연구사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 효과 과학적 증명
들기름 품질 표준화ㆍ등급 규격화 연구 추진

어린 시절 입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가 뜨끈한 밥에 계란반숙, 간장 반 숟갈, 참기름 한 방울을 톡 넣고 간장비빔밥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필자 역시 아이들에게 비빔밥을 만들어주곤 하는데 참기름 대신 들기름 한 스푼을 넣는다. 바로 지방산 밸런스를 맞춰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전통기름으로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있는데, 식물학적으로 보면 참깨와 들깨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다. 참깨는 호마과에 1년생 초본이고, 들깨는 꿀풀과이며, 씨앗크기가 작은 것을 제외하고는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참깨는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들깨는 한국을 중심으로 네팔, 러시아 등 동부아시아에 분포해 있으며, 알맹이는 식용기름, 조미가루로, 잎은 쌈채소 및 장아찌로 많이 이용된다. 참깨와 참기름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용하고 있으나, 들깨와 들깻잎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들깨를 이용한 음식문화는 우리나라만 발달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들깨 재배통계가 잡히는 것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기름의 주성분은 포화지방산, 올레산, 리놀레산, 리놀렌산이다. 포화지방산과 올레산은 동물 체내에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로부터 만들어지지만, 리놀레산(오메가-6)과 리놀렌산(오메가-3)은 식물로부터 만들어지고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반드시 식품으로 섭취해야 한다.

올레산이나 리놀레산은 올리브기름, 콩기름, 참기름 등 우리가 평소 많이 섭취하고 있는 기름에 들어 있다. 반면 오메가-3 지방산인 리놀렌산은 우리나라의 들깨, 유럽의 아마, 남미의 치아에만 함유되어 있다. 이중 가장 많은 함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들깨이다.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은 참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에 많고, 동물성 DHA, EPA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동물성 오메가-3 지방산의 항염증, 항암, 심혈관 예방 및 치매 예방 등의 효과는 알려졌으나, 들기름의 알파-리놀렌산 효능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들깨가 가지고 있는 영양학적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 부산대 조은주 교수팀과 공동으로 들기름의 학습능력 향상 및 치매 예방 효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기억과 인지능력 손상을 유발한 쥐를 이용해 들기름, 옥수수기름, 올리브기름을 각각 2주간 투여한 후 장ㆍ단기 기억능력과 관련된 행동양상을 조사했다.

단기 기억 능력을 평가하는 물체인지 및 T-미로 실험에서 들기름을 투여한 쥐의 물체인지 능력과 공간기억 능력은 기억력이 손상된 쥐보다 각각 13%, 24% 더 높게 나타나 정상군과 유사한 수준으로 회복됨을 알 수 있었다. 장기 기억 능력을 평가하는 수중 미로실험에서도 들기름을 투여한 쥐는 학습된 목적지를 기억하고 도달하는 시간이 가장 빨라, 학습능력 및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가장 우수함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들기름을 섭취한 쥐는 노화의 원인이 되는 물질인 지질과산화 생성이 들기름을 섭취하지 않은 쥐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불어 기존 기억력 개선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동물성 오메가-3 지방산(EPA, DHA)과 들기름의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알파-리놀렌산)과의 효과 비교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들기름과 알파-리놀렌산의 학습능력 향상 및 기억력 개선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들깨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 문구가 있다. ‘오메가 다이어트’라는 책에서‘한국인의 축복, 들깨’라는 문구이다. ‘한국인의 축복, 들깨. 한국의 전통 식품인 들깨는 오메가-3 지방산을 매우 많이 품고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이 두뇌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인의 뛰어난 지능과 명석함은 들깨 덕분일 것이다’라는 추천사 내용이다. 이제 이 문구를‘세계인의 축복, 들깨’로 바꾸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세계 프리미엄 기름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도록 들기름의 품질 표준화 및 등급 규격화에 대한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기계화 수확이 가능하여 누구나 쉽게 재배할 수 있고, 착유량과 리놀렌산이 많은 고품질 들깨 품종 개발을 비롯하여, 국산 들기름의 원료곡 안정 수급을 위해 가공업체와 연계한 들깨 단지화 기술 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식문화였던 들기름이 세계인의 건강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