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express)’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짜낸 성분’ 또는 ‘주문 즉시 완성되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에스프레소를 기다려야지, 에스프레소가 사람을 기다릴 수 없다’는 이탈리아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에스프레소는 빠르게 만들어지며 만든 즉시, 크레마가 꺼지기 전에 마셔야 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크레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식으면 에스프레소 특유의 부드러운 맛은 사라지고, 신맛과 짠맛은 점점 더 강해진다.

20세기 초에 들어 빨리 생산할 수 있는 커피 추출법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더 높은 압력을 사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하지만 끓는 물을 사용해 쓴맛이 지나치게 강하고 용해성도 떨어지는 물질이 과다 추출됐다. 그래서 끓는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고압의 온수를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바리스타가 레버를 사용해 팔 힘으로 압력을 10바(bar)까지 올리면서 두꺼운 크레마를 만드는 기술을 사용했고, 지금은 전기펌프를 사용해 더 쉽고 정확한 방법으로 깊은 맛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다.

압력은 에스프레소의 맛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며, 에스프레소만의 특징을 만들어 낸다. 압력이 가해진 적은 양의 물은 커피 분말을 지나가면서 순식간에 농도 짙은 커피가 추출된다. 압력을 받은 물이 드립커피나 인스턴트커피와 달리 수용성 성분과 지용성 성분을 모두 포함해 추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지용성이다. 향이 지용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진한 색의 액체 위에 떠 있는 두꺼운 크레마 층은 에스프레소만의 특징이다. 커피를 여과 추출하는 동안 발생하는 또 다른 중요한 화학 현상은 커피 세포 내부에 건조돼 포함된 8~16%의 비수용성 지질물질이 유화된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추출에서 유화된 지질은 0.5~10마이크로미터 정도의 전형적인 유화물 크기이다. 유화는 단백질 등 계면 활성성분이 표면을 잘 감싸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이어서 한 주가 지나도 뭉치지 않는다. 이것이 바디라고 하는 부드러운 크림 같은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 거품은 에스프레소를 주위의 공기 또는 수분으로부터 보호해줌으로써 에스프레소 고유의 풍부한 맛과 향을 좀 더 오래 지속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에스프레소의 정량적 범위
분쇄 커피양 6.5±1.5g
물 온도 90±5℃
추출 압력 9±2bar
추출 시간 30±5초

에스프레소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
에스프레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너무 많지만 그 요인을 크게 꼽으면 △에스프레소 머신 △원두커피의 양 △커피 입도 △온도 △압력 △여과시간 △수질 △기계 청결도 등이다.

에스프레소 머신 : 고압, 정밀한 온도ㆍ시간 제어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구자인 베제라가 받은 특허는 단순하게 가열된 보일러의 압력으로 추출이 된다. 당시 머신의 문제점은 낮은 압력 1.5atm에서 100℃ 이상인 높은 온도로 추출이 돼 불쾌한 쓴맛이 추출된다는 것이다. 이후 개선을 거듭해 정교한 온도와 압력이 제공되는 기계가 됐다. 온도와 압력을 얼마만큼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지에 따라 추출조건이 결정되고 맛이 달라진다.

필터홀더
에스프레소 추출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고 고압이 걸리기 때문에 필터의 디자인도 제품의 풍미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모양, 크기, 가로 세로의 비율에 필터 구멍의 크기와 형태까지 모든 것이 품질에 연결되는 것이다. 구멍이 크면 커피가 빠져나가고 적으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직면에서 위는 작고 아래는 큰 삼각형 모양이어야 찌꺼기가 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구멍이 낡게 되면 그 의미가 미미해진다.

커피의 양과 탬핑
1인분에 허용될 수 있는 원두커피 분말량의 최대 범위는 5~8g 정도이다. 양이 적으면 커피를 아낄 수 있으나 향이 부족하고 양이 너무 많으면 너무 조밀해져서 여과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단단한 침전물들이 컵 안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로부스타는 추출물이 많으므로 좀 더 적은 양이 사용되나 아라비카 종을 쓸 때는 통상 1인분이 6.5g이다.
 
진하게 볶은 원두일수록 사용량을 약간씩 줄여야 한다. 저울 대신에 분쇄기의 도저를 이용하면 부피단위이므로 개략적인 양이 된다. 정밀도도 낮고 부피와 무게가 완전히 동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말의 밀도와 분말이 얼마나 꽉 차게 들어있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오차는 무시할 만하다.

투과성
입자의 크기와 얼마나 채워 담고 눌러주느냐가 투과성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적당한 투과성이 있어야 최고의 맛을 추출할 수 있다. 필터에 담은 커피 분말을 얼마나 균일하고 적당한 압력으로 눌러주느냐도 생각보다 대단히 중요하다. 균일하지 못해 국지적인 수로가 생겨서 그쪽으로 물이 빠져나가면 그 부분은 과도한 추출이 일어나고 다른 부분은 과소한 추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간과 적당한 압력,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균일한 면이 에스프레소 추출에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적절한 입도 및 분표
의심의 여지없이 분말의 크기는 에스프레소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커피 추출 시 분쇄된 커피 성분의 18~22% 정도가 추출될 때 맛이 좋다고 한다. 에스프레소 방식은 드립 방식에 비해 추출된 양의 편차가 많다. 드립 방식은 추출이 천천히 일어나 시간이 길기에 추출물의 재현이 쉽지만 에스프레소는 고온 고압으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변화의 폭이 심한 것이다. 따라서 집중력이 더 필요하다. 입도가 크면 추출물의 양은 적고 속도는 빨라지며, 입도가 작으면 추출물은 많고 속도는 느려지는 것이다. 매우 강한 에스프레소를 위해, 예를 들어 물 대비 커피의 양을 많게 하면 입도가 고울수록 추출량은 감소한다.

온도에 따른 추출의 패턴과 입도에 따른 추출의 패턴

 

정교한 온도 및 시간 제어
에스프레소는 가압추출을 통해 수용성ㆍ지용성 물질이 효과적으로 추출된다. 온도가 높을수록 효율은 좋지만 동시에 쓴맛도 많이 추출되므로 90℃를 기준으로 하고, 정교한 온도 조절이 가능한 기계는 온도를 92℃ 이상으로 높이기도 한다. 더구나 로스팅을 약하게 하면 원두 내에 쓴맛 성분이 적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추출시간은 30초가 기준인데 15초 미만일 경우 에스프레소 고유의 맛이 나지 않고 산도는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 추출시간이 30초를 초과할 경우 과다추출로 인해 다른 커피와 별 차이 없는 쓰고 텁텁한 맛의 커피가 추출된다.

색과 산미 등은 쉽게 추출되는데 문제는 향미와 쓴맛과의 관계이다. 둘 다 물에 잘 녹지 않아 강한 조건이 필요한데, 쓴맛은 적고 향은 풍부한 커피를 추출하는 최적점을 찾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높은 온도는 용해도를 높여 많은 추출이 일어나게 해 수율이 올라간다. 따라서 지나치게 쓴맛이 나오지 않는 범위에서 고온으로 올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온도가 최대 92℃를 넘으면 급격히 쓴맛이 녹아나오므로 한계가 있다.

성분에 따라서 온도에 따라 용해도가 증가하는 패턴이 다르다. 예를 들어 설탕은 저온에서 잘 녹지만 고온이라고 용해도가 특별히 높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유당은 온도가 높아지면 용해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유당을 피하고 싶으면 저온에서 장시간 녹이고 유당을 높이고 싶으면 고온이 좋은 것이다. 이런 원리가 커피에 적용된다. 맛 성분은 저온에서도 추출되지만 쓴맛은 저온에서는 적게 추출되고 고온에서 다량 추출된다. 따라서 시간을 짧게 한다고 해도 온도를 너무 높이면 안 되는 것이다.

온도에 따른 성분별 용해도

 

높은 온도에서는 당연히 맛 성분도 잘 녹고 향기성분도 잘 녹는다. 그런데 분자량이 큰 쓴맛 물질은 빠져나오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이런 물질이 빠져나오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다른 맛과 향 물질을 많이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추출시간이 있는 것이다.

에스프레소는 마신 후에도 밀도 높은 강렬한 향이 지속되는 묘약이다. 풍성한 바디와 띠를 이룬 헤이즐넛 색깔의 크레마가 있어 눈으로 보고 입에 닿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은 오래 숙성한 와인을 마시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심미적인 일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아름답고 좋은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 그리고 지적이며 영적인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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