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는 물이 98%이다. 커피는 추출의 용매이자 맛의 바탕이다. 따라서 물의 품질이 커피의 품질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든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졌고 원자는 광속의 10%에 해당하는 속도로 회전하는 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분자는 격렬하게 움직인다. 움직임의 정도는 온도가 높을수록 커지고 분자가 적을수록 커진다. 고분자는 움직임이 둔하고 향기물질 같은 저분자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분자의 운동과 충돌이 활발해져 변화도 빨라지고 추출도 빨라진다. 물도 마찬가지다. 물은 항상 진동하며 주변의 물과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액체 상태에서는 10-11초 간격으로, 동결된 상태에서도 10-5초 간격으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정말 역동적인 것이다. 그래서 냉동고에 얼려진 아이스크림의 얼음 입자도 크기가 변하고 단단하게 겔화된 젤리에서도 색소의 유동이 일어난다. 식품의 모든 경시변화의 배경에는 이런 분자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분자운동의 대표적인 현상이 브라운 운동이다. 물에 꽃가루를 떨어뜨리면 꽃가루가 살아있는 것처럼 마구 움직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으로부터 꽃가루는 물의 원자가 충돌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여 원자의 유무 논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물 분자의 크기는 불과 0.2nm, 꽃가루의 크기는 무려 5,000~50,000nm으로 직경의 차이가 10,000배 이상이며 부피(크기) 차이는 1조 배에 이른다. 물 분자들이 모여서 자기보다 1조 배 큰 꽃가루를 끊임없이 흔들리게 할 정도로 역동적으로 진동한다. 이런 물의 역동성이야말로 생명의 근본적인 힘인지도 모른다.

- 용해도 : 유유상종
이런 분자의 진동으로 서로 친한 분자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이것이 용해도 현상이고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 중 하나이다. 물은 극성이 있다. 따라서 극성이 있는 분자끼리 모인다. 물과 반대되는 분자로 기름이 있다. 비극성이라 비극성 용매끼리 모인다.

- 추출(용해도)에 미치는 pH 영향
식품의 구성 원자는 탄소, 수소, 산소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탄소와 수소가 되면 -CH2-의 형태인데 전형적으로 지방의 비극성, 소수성 형태이다. 산소가 있어야 -OH(알코올), =O(케톤), -COOH(유기산) 같은 형태의 극성 분자가 된다. 따라서 탄소, 수소, 산소 위주로 만들어진 분자로 된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산성이다. pH가 낮아지면 이들의 극성부분이 수소이온(H+)으로 쉽게 마스킹되어 분자 간의 반발력이 감소하여 용해도가 떨어진다. pH가 높아지면, 즉 알칼리가 되면(-OH의 증가) 식품에 주류를 차지하는 유기산, 아미노산 등 산성분자들의 극성이 높아지고, 따라서 분자 간의 반발력도 증가하여 용해도가 크게 증가한다. 알칼리 처리한 코코아의 색이 진해지는 현상에서 산성에서는 폴리머의 점도가 감소하고 겔화가 일어나는 등의 여러 식품 현상을 일으킨다.

- 물의 경도 영향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2가 이온은 단백질이나 다당류 같은 폴리머 사이에 들어가 양쪽을 붙잡는다. 점도가 증가하거나 단단한 겔이 된다. 이런 현상의 대표적인 예가 젤란검의 경우이다. 사이드체인이 없는 로우아실형 젤란검은 칼슘이온이 없으면 75℃에서 녹는다. 그런데 칼슘이온이 불과 200ppm만 있어도 100℃까지 가열해도 녹지 않는다. 칼슘에 붙잡혀 녹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구연산나트륨 같은 봉쇄제를 넣으면 이들이 칼슘과 결합하여 칼슘이 젤란검을 붙잡는 현상이 차단되므로 훨씬 낮은 온도에서 녹는다. 이런 특성은 겔화와 용해뿐 아니라 추출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추출에 쓰이는 물의 경도 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 커피 추출에서 물의 영향
커피는 물이 98%이다. 커피는 추출의 용매이자 맛의 바탕이다. 따라서 물의 품질이 커피의 품질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기계의 수명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따라서 물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맛 측면에서는 염소 처리와 같은 일반적인 소독 치료는 불쾌한 맛을 줄 수 있으므로 여과를 통해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의 경도에 주의해야 한다. 2가 이온은 불용성 염을(주로 탄산염 그리고 황산염 및 규산염) 생성한다. 이것은 가열기 표면에 스케일 형태로 침전하는 경향이 있다. 열 전달을 방해하고 에스프레소 기계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물의 경도가 높으면 여과 시간이 증가된다. 우리나라의 물은 대체로 경도가 낮은 연수이지만 확인이 필요하면 연수기를 사용하여야 한다. pH가 낮으면 대체로 물의 용해도가 떨어져 추출율이 떨어진다. 물의 품질이 맛과 향뿐 아니라 추출량, 추출시간, 거품 등에도 영향을 미치니 세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커피에 사용하는 물에 대한 규격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a) Total Dissolved Solids(TDS) : 물에 녹아 있는 성분의 양이다. 보통 커피에는 경도가 75~250ppm, 평균 150㎎ 정도를 추천한다. TDS가 높으면 무겁고 성분에 따라 미끈거리기도 한다. 300ppm이 넘으면 추출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TDS가 낮으면 가볍고 산뜻한 반면 너무 낮으면 굉장히 빠른 확산이 일어나 커피의 자극적인 신맛, 쓴맛이 강해질 수 있다. 가정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TDS는 보동 80~100ppm 정도로 추출에 적합하지만, 혹시 ‘염소’ 성분이 남았는지 유의해야 한다. 염소는 강력한 산화물질로 커피의 산을 중화시키는 데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커피 추출에 적합하지 않다. 정수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b) 경도 : SCAA는 경도를 17~85ppm 사이를 추천한다(CaCO3로 측정 시).
물에서 칼슘이나 마그네슘 등 양이온이 많이 든 물을 경수(Hard Water)라 하며, 적게 든 물은 연수(Soft Water)라고 부른다. 알칼리도를 유발시키는 물질을 일시 경도라 하며, 끓이면 침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그네슘, 칼슘 등이 다른 물질과 결합된 양이온들은 영구 경도로, 끓여도 없어지지 않으며 이런 경도유발 물질들은 뜨거운 보일러 안에서 물이 증발될 때 석출되어 스케일로 흡착된다. TDS의 관점에서 적정량의 경도는 커피 맛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다.

c) pH : SCAA는 커피에 pH 6.5~7.5를 최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pH 1은 수소이온의 로그(log)값으로, 무려 10배의 차이가 난다. 1차이가 수소이온 10배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체로 알칼리 쪽이 용해도가 증가하지만 알칼리도가 지나치면 산미물질을 중화시켜 버린다. 커피 맛에 산이 없어지면 맛의 중심이 없어지고 활기가 없어져 버린다.

물은 생각보다 제품의 맛을 좌우하는 영향이 크다. 동일한 레시피, 동일한 원료, 동일한 설비를 사용해도 지역별로 생산되는 제품의 맛 차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식품공장을 지을 때 물이 좋은 곳을 찾기도 한다. 한국의 커피는 한국의 물에 맞는 조건을 찾아야 할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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