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된 원두는 저장 안정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고온에서 로스팅을 하여 살균이 이루어졌고 수분도 매우 낮아서 효소와 미생물에 의한 부패(손상)는 없다. 하지만 변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가 숙성인지 산패인지 경계는 모호하다. 숙성은 커피가 로스팅으로 거칠게 만들어진 향이 안정화 되면서 일어나고 동시에 산패도 일어나지만 일정 기간은 긍정적인 변화가 많고,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인 변화는 없이 산패만 일어나므로 점점 품질이 나빠지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산소, 습도, 제품상태, 포장상태 등에 따라 좌우되므로 이들 조건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 커피의 보관 중 품질 변화는 앞에서 살펴본 다른 향기성분의 변화와 동일한 맥락이다.

향기물질의 변화
원두는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백 개의 화합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 중 일부는 안정적이어서 저장 중에 증발로 상실되는 것 이외의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화합물은 향의 품질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문제는 향기에 영향이 큰 미량 성분이다. 불안정하고 특히 산화되기 쉬운 물질이다. 특히 싸이올 같이 역치가 낮은 화합물이 그러하다. 이런 물질은 로스팅 이후 휘발에 의해 상실될 수도 있지만 멜라노이딘 같은 물질과 결합에 의해 사라지기 쉽다.

1990년대 연구결과 볶은 커피에서 커피 향의 핵심 향기성분인 28개 화합물을 찾아냈다(Grosch 1999, 2001; Czerny외 2001). 이 물질 중의 하나인 메테인싸이올이 커피의 신선도 지표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그 뒤로도 커피향의 신선함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커피 품질의 열화는 2-methylpropanal, 3-methylbutanal, 2,3-butanedione, 2-methylbutanal, 메테인싸이올, 2-furfurylthiol 등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물질이 주로 산화나 결합으로 소실되어 발생한 문제이다. 또 끓는점이 낮은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들 물질은 저장 3주에 걸쳐 많이 소실된다.

커피로부터 휘발성 물질의 상실은 이들의 휘발성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커피의 세포 속에 갇혀있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세포벽, 다당류, 지방, 멜라노이딘이 향기물질의 방출을 억제한다. 지방은 우선적으로 알킬피라진과 같은 친유성 물질을 붙잡는다.

향 물질이 증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커피콩 세포구조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원두에서 중심에 있던 향이 외부로 나오려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세포의 세포벽을 거쳐야 한다. 세포가 20um 크기라면 2mm를 빠져나오려면 100번의 세포벽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분쇄한 커피의 경우 그만큼 빠져나오기가 쉬워 향기 손실이 많이 일어난다. 입자의 크기와 반비례하여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아주 잘게 분쇄한 커피는 제대로 포장하여 보관되지 않으면 노출된 지 몇 시간 만에 향기를 잃어버리고, 산화작용 때문에 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포장된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산소가 침투할 수 있어 커피 향이 빨리 손상된다.

CO2 가스 방출 및 산화
이산화탄소는 향이 없지만 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스팅으로 생성된 이산화탄소는 이미 많이 손실되었지만 그래도 상당량은 세포의 격자 구조 안에 갇혀 있으며 그것이 커피향 유지에 유리하다. 산소의 침투에 의한 산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압력에 의해 커피성분 속에 녹아 있을 때는 부피가 작지만, 기화하면 부피가 1000배 이상 늘어난다. 이산화탄소는 로스팅 이후 몇 주간에 걸쳐 빠져나가게 되는데, 이 결과 1.5~1.7%의 무게가 줄어든다. 부피로 치면 커피콩의 kg당 6~10리터 정도로 추정되는 양이다.

가스 방출율은 처음에는 많지만 차츰 감소한다. 그래서 커피콩에서 이산화탄소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많은 이산화탄소가 커피콩 조직에 묶여있기 때문에 이 과정은 느리게 진행된다. 원두를 분쇄하면 이산화탄소의 손실도 빨라지고 향기성분의 손실도 빨라진다. 물론 온도가 높아지면 더 빨라진다. 실험결과 10℃ 온도 증가에 따라 휘발성 물질의 방출율은 1.5배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분쇄한 커피의 확산 계수는 이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름 용출
이산화탄소는 비극성이라 기름에도 잘 녹고 이산화탄소가 기화되어 빠져나오면서 기름도 같이 용출되는 경향이 있다. 기름용출 현상은 로스팅할 때 시작하여 가스 제거 시에도 계속 진행된다. 저온에서는 기름이 굳거나 점도가 높아져 기름용출 과정은 늦춰진다. 기름이 커피의 표면으로 이동하면 산소에 노출되어 산화의 위험이 커진다. 기름 배출과 관계된 또 다른 문제는 입자들의 끈적거림이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응집성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균일하지 못한 추출이 이루어진다.

산소 흡수
산화 반응은 저장 중 커피콩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커피에서 일어나는 산화반응은 산소량, 온도에 따라 증가한다. 커피는 수분함량이 2~5% 정도인데, 이것은 수분활성도 Aw. 0.2~0.4에 해당하고 산화되기 쉬운 조건이다. 산소 농도가 낮을 때(0.1~1.1%) 품질 저하지수(QO2)는 10.5 정도로 산소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급격하게 품질저하가 일어나고 산소농도가 5%까지 상승하면 품질저하 지수가 1.1로 감소한다. 이후 21%가 될 때까지 별로 변하지 않는다. 즉 산소 농도가 5%가 넘으면 산소가 충분하여 이전보다 품질 악화율은 1/10로 감소한다는 뜻, 즉 5% 이하의 산소면 산화를 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이라는 뜻이다.

로스팅 과정 가운데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는 효과적인 보호막을 형성하며, 대부분의 산소를 세포구조로부터 몰아내어 산화의 시작을 늦춘다. 시간이 지나 이산화탄소 제거가 끝나면 산패가 빨라진다. 더구나 원두를 분쇄한다면 이산화탄소 보호막이 제거되고 산소는 유입되며 접촉면적도 급속하게 늘어나 산화에 민감해진다. 커피의 지방에는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C18:2)이 많아 산화에 민감하다. 산화에 의한 이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트렌스-2-노네날과 같은 휘발성 알데하이드의 형성이다. 이는 지질산화의 주된 부산물로서 역치가 0.08ppb이다.

습도의 영향
볶은 커피는 수분이 거의 제거되었지만 이후 반응의 산물이나 주변으로부터 흡습에 의해 수분이 증가할 수 있다. 분쇄 시 흡습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수분이 낮으면 분쇄하기 쉽다. 수분이 증가하면 물의 가소화 효과 때문에 고무처럼 탄력적이 되어 분쇄가 어려워진다.
수분함량이 8%가 넘으면서 수분활성도가 급격히 증가하여 수분이 15% 정도만 되어도 수분활성도가 0.8 이상이 된다.

빛의 영향
빛은 많은 화학작용에서 촉매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아라비카 종처럼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경우 빛에 의한 자동산화로 인한 산패의 발생을 조심해야 한다.

포장의 영향
커피콩 상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포장의 중요성은 커진다. 로스팅된 커피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바로 소비되거나, 물과 산소가 투과되지 않는 용기에 포장되어야 한다. 잘못된 제조과정으로 인하여 상품의 최종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공정을 살핌과 동시에 특수한 포장 재료 및 기술이 요구된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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